최근 수년간 한국 벤처산업에 대한 평가는 코스닥시장의 등락에 따라 성급한 낙관론과 비관론으로 치닫곤 했다.

낙관론과 1년의 시차를 두고 제기되는 비관론은 양쪽 모두 한국 벤처산업의 현실에 대한 객관적 평가라고 보기 어렵다.

IMF 위기 이후 벤처인증기업의 급격한 증가를 진정한 의미의 벤처창업의 증가로, 1999년 이후 코스닥시장의 주가버블을 벤처기업의 진정한 가치로, 그리고 벤처투자자금의 과잉공급을 벤처캐피털의 역량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러한 오해와 혼동은 시장의 형성 성장 조정과정에서 관찰되는 과대진폭(overshooting) 현상 및 정부의 적극적 벤처육성 의지표명과 더불어 벤처산업의 역량이 단기간에 획기적으로 확충될 수 있다는 환상을 낳았고, 환상이 깨지는 순간 낙관론은 비관론으로 돌변했다.

미국의 벤처캐피털이 자생적으로 발전한 것과 달리 한국의 벤처캐피털은 정부의 산업구조 고도화 정책 일환으로 80년대 중반 인위적으로 생성됐다.

당시만 해도 한국의 창업중소기업들이란 대부분 고위험이지만 저수익의 투자대상이었고 투자회수 시장도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열악한 여건에서 벤처캐피털의 성장이 강요돼 왔다.

이 때문에 90년대 중반까지도 대부분의 벤처캐피털회사들은 적자를 면하는 것 자체가 과제였다.

그런데 99년 이후 코스닥시장이 활성화되면서 벤처투자의 수익을 회수할 수 있는 문이 넓어지게 됐다.

때마침 급상승 국면에 있던 미국 나스닥시장의 호황과 더불어 코스닥시장의 거래량은 99년 1년동안 전년대비 42배라는 엄청난 규모로 증가했고 주가도 매우 가파르게 상승했다.

그러나 정보통신혁명에 따른 새로운 시장 및 기술기회의 등장을 감안하더라도 진정한 벤처기업의 숫자가 단기간에 폭발적으로 증가하기란 불가능했다.

결국 벤처기업들의 자금 수요에 비해 벤처투자자금의 공급이 과다할 수밖에 없었다.

소수의 벤처기업을 둘러싼 투자자들의 경쟁은 치열했고 이러한 과정에서 벤처기업들은 엄청난 자금을 손쉽게 조달한 반면, 고액의 프리미엄을 지급하면서 투자를 한 벤처캐피털회사들의 수익률은 불확실할 수밖에 없었다.

코스닥시장의 엄청난 고성장이 갖는 의미는 비록 그것이 일회적이기는 하지만, 벤처캐피털의 성장과 발전에 유용한 충격과 촉매역할을 했다는데 있다.

아직 성장초기에 있기는 하나 ''시장에 기반한 성장''이라는 새로운 발전국면은 한국 벤처산업의 미래를 밝히는 중요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한국 벤처산업은 이제 이륙을 시작한 것이다.

한국 벤처산업의 현실과 국민경제적 기여를 과대포장하는 것은 벤처관련 시장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지양돼야 한다.

벤처기업이란 첨단기술 사업영역의 신규 기업으로 성공 가능성이 낮지만, 성공할 경우 높은 수익을 실현할 수 있는 잠재력과 역량을 가진 기업들이다.

이러한 벤처기업의 본성 때문에 벤처기업은 창업중소기업들 중에서도 소수 집단에 불과하며, 부가가치 및 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를 넘지 못한다.

그러나 소수의 모험기업은 새 시장과 산업을 창출함으로써 경제의 구조변화를 촉진하고 활발한 진입과 퇴출을 통해 시장경쟁을 촉진하는데 기여한다.

요컨대 벤처기업의 순기능은 거시경제적 비중이 높기 때문이 아니라 경제에 활력을 창출한다는데 있다.

작년 봄 이후 코스닥시장의 주가폭락은 그 이전의 버블을 제거하는 과정에 불과했으며, IMF 위기 이후 시작된 벤처붐은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

주가폭락에도 불구하고 작년 한햇동안 코스닥시장을 통한 자금조달 규모와 벤처캐피털의 신규 투자는 전년에 비해 오히려 크게 증가했다.

벤처붐은 코스닥시장의 주가상승에만 기인한 것이 아니라 경제위기 이후 구조조정과정에서 높아진 창업인센티브와 정보통신산업의 고성장 및 신시장의 전개를 비롯한 구조변화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벤처붐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다.

ssm@kdiux.kdi.re.kr

◇ 필자약력 =△서울대 경제학과 △미국 예일대 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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