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한 <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일대기는 바로 우리나라 건설산업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해방 직후 설립한 현대토건사를 국내 1위, 세계 17위란 굴지의 건설기업으로 키웠다.

1960년대 중반부터는 태국의 고속도로 건설공사를 시작으로 해외건설시장에서 한국의 신화를 창조한 장본인이다.

건설산업은 종합산업이다.

현장이 바로 공장이기 때문에 모든 공정이 항상 새롭게 시작된다.

생산에 소요되는 부품의 종류가 다른 어느 산업보다 많고 가격도 비싸다.

전공분야별로 별도의 시공자 참여가 불가피함에 따라 생산체계도 복잡하다.

더욱이 동일한 제품을 반복 생산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따라서 경영자의 관리능력에 따라 엄청난 이익이 발생하기도 하고 기업이 문을 닫아야 하는 커다란 손실을 보기도 한다.

정 명예회장은 이러한 건설산업의 특성을 십분 활용한 탁월한 경영인이었다.

서산간척지의 방조제 건설시 유조선을 이용한 물막이공사,이른바 ''정주영공법''의 적용으로 난공사를 마무리하고 공사비를 크게 절감했다.

1970년대 말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항의 석유수출터미널 공사시에는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를 적용했다.

철골조를 울산에서 건조해 무려 1만2천㎞ 떨어진 현장까지 바지선으로 수송함으로써 저가수주에도 불구하고 큰 이익을 남겼다.

건설산업의 경쟁력은 기술력에 있다.

건설기술은 제조업 등 여타 산업의 기술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엮어 활용하느냐가 핵심이다.

이러한 기술은 대부분이 특허 등의 형태보다는 기술자에 체화된 상태로 존재한다.

그래서 건설의 생산성은 기술인력의 창의력과 신명에 의존하게 된다.

즉 기업문화가 중요한 요소다.

정 명예회장은 건설기업의 새로운 문화를 창출했다.

강력한 추진력,창의적 사고,철저한 신용 등이 그것이다.

67년에 착공된 동양 최대의 다목적댐인 소양강댐 공사는 당초 일본 업체에 의해 콘크리트 중력댐으로 설계되었으나 당시의 철근 시멘트 등 기초자재 생산능력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또한 자재를 산간벽지까지 운반하는 데도 상당한 운송비가 소요돼야 했다.

설계대로 콘크리트댐을 건설하게 되면 기초자재,설계·용역비 등 막대한 자금이 일본으로 흘러나가게 될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그는 콘크리트 대신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모래,자갈을 이용한 사력댐으로 건설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일본 업체는 물론 정부 당국자들의 결사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대통령을 설득,결국 사력댐으로 공사를 함으로써 예산을 3분의 1로 절감했다.

이러한 사례는 창의적 사고와 자신이 옳다고 판단되면 끝까지 관철시키는 불굴의 기업가 정신,그리고 기업의 이해도 중요하지만 국가경제를 먼저 생각하는 국가관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경부고속도로만 해도 그렇다.

당시 고속도로 공사경험을 가진 업체는 태국에서 공사를 해본 현대건설뿐이었다.

정부는 경부고속도로의 첫 구간이자 시범구간인 서울∼오산간 공사를 현대건설에 수의계약으로 맡겼다.

이는 고속도로 건설에 참여한 전체 건설업체에 모범을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 현대건설의 시공기술이 전체 업체에 급속히 전파돼 우리나라의 고속도로 시공능력이 단시일 내에 세계적 수준으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됐다.

지금 우리나라 건설산업은 IMF 이후 건설수요의 급감,날로 치열해지는 해외시장에서의 경쟁 등으로 매우 혼미한 상태에 있다.

정부의 과도한 규제도 한몫을 한다.

훌륭한 기업가는 기업을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국가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훌륭한 기업가는 자신의 노력과 재능도 중요하지만 사회가 만들어내야 한다.

기업인들이 마음껏 창의력을 발휘하고 불굴의 의지로 난관을 극복할 수 있도록 그들을 옥죄고 있는 사슬을 과감히 풀어줘야 한다.

한때 우리는 성공한 기업가를 존경하기보다는 특혜의 시혜자로 폄하하기도 했다.

그들의 공로가 정당히 평가받음으로써 제2,제3의 정주영이 나타나 현재의 난관을 극복하는 데 앞장서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