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아침 서울 대치동에 있는 한국기술투자 사무실로 50대 주부 이모씨가 들어섰다.

지난 1999년 8월 한국기술투자의 구조조정펀드에 4천만원을 맡겼는데 불안해서 찾아온 것.

"서갑수 회장이 수사를 받는다고 하는데 내 돈이 어떻게 되는지 걱정이 돼서 견딜 수가 있어야지요"

조합원 펀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직원들이 설명했지만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씨는 펀드에 투자한 경위를 이렇게 설명했다.

"당시엔 코스닥 시장이 활황이었습니다. 원금의 몇배에 해당하는 수익을 거둔 사람들이 주변에 많았습니다. 그러나 자산을 안정적으로 굴리고 싶고 회사도 믿을만 했기 때문에 한국기술투자에 돈을 맡겼던 거죠"

그는 "제발 내 재산에 피해가 없도록 해달라"며 발길을 돌렸다.

한국의 벤처캐피털회사들은 투자금중 상당부분(20∼30%)을 개인투자자들에게 의지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벤처캐피털리스트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사라지지 않고 있어 투자자들의 원성과 불만이 적지 않다.

최근 서울 무역회관에서 열린 벤처캐피탈협회 정기총회 때도 업계의 현주소를 엿볼 수 있는 일이 생겼다.

공식행사가 끝나고 오찬을 하던중 옵서버로 참석했던 중소기업청 관계자가 갑자기 ''경고성 발언''을 했다.

"조합원 돈을 회사 돈인양, 자기주머니 돈인양 쓰는 경우가 많다는 민원이 끊이지 않습니다. 제발 자기 이미지를 더럽히는 행위를 자제합시다"

그는 "관치금융의 논란이 있지만 펀드로 조성된 돈을 농협에 강제 예치토록 한 것도 이같은 일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벤처캐피털 업계는 서 회장 사건이 더 이상 확대되지 않길 바라는 분위기다.

이와 관련, 벤처캐피털 사장들은 27일과 28일 잇따라 모임을 가지면서 반성과 자정(自淨) 의지를 다졌다.

회사계정과 조합자산을 엄격히 분리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자는 얘기도 나왔다.

한 사장은 "사정당국이나 일반인들로부터 받는 의심의 눈초리가 정말 견디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이런 눈초리를 받지 않으려면 벤처캐피털 업계가 먼저 다시 태어나야 할 것 같다.

이성태 벤처중기부 기자 ste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