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기웅 < 대한상공회의소 상무이사 kwom@kcci.or.kr >

미국 소설작가 O 헨리는 3백편에 가까운 단편을 남겼다.

''마지막 잎새''는 무명 노화가가 자신을 희생해 병든 처녀를 구하는 가슴 뭉클한 이야기다.

''20년후''도 그의 작품중 하나다.

지미 월스는 야간순찰중 20년 만에 고교 동창을 만난다.

담뱃불을 붙이는 순간 드러난 친구 보브의 얼굴 흉터는 바로 수배중인 범인의 모습이었다.

헤어진 후 다른 동료가 와서 그를 체포한다.

지미의 마음 속에 고뇌가 스쳐간다.

이와 비슷하지만 결과가 다른 경우를 소설로 다시 구성해 보면 어떨까.

젊은 한 경찰관이 격렬한 시위장소에서 옛 동창과 맞부닥친다.

머뭇거리는 동안 휘두르는 친구의 쇠파이프에 맞고 그 자리에서 쓰러진다.

병원에 실려간 그는 옛 친구의 일그러진 얼굴을 내내 잊지 못한다.

지난 2월 중순 학생과 노동계가 연대한 대우차 부평공장 파업현장에서 일어남직한 일이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시위대를 아주 엄하게 다룬다고 한다.

재작년 WTO 총회가 열린 시애틀에서 중무장한 경찰이 세계화 반대 군중을 무자비하게 해산시키는 장면이 TV에 방영됐다.

영국도 예외는 아니다.

1980년대 대처정부는 탄광을 비롯한 많은 노조 불법파업을 기마대까지 동원해 매우 강경하게 진압했다.

그러나 우리 현실은 어떠한가.

그날 부평공장에서 60여명의 경찰이 중경상을 입고 한 명은 눈을 다쳐 실명했다고 한다.

더욱 가슴아픈 것은 시위대에 참가한 학생들의 행동이다.

화염병과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모습에서 우리는 어두운 장래를 읽는다.

국가를 이끌어갈 그들이 법을 지키지 않으면 누가 이 나라를 지킬 것인가.

법과 질서가 없는 곳에 기업도 설 땅을 잃는다.

결국 기업 엑소더스가 일어나고 외국기업도 우리 곁을 떠난다.

남는 것은 막대한 외채와 대량 실업뿐이다.

지금 불황에 허덕이는 많은 기업인들은 폐렴을 앓는 존시의 유일한 소망,담쟁이잎 하나를 밤새워 담벽에 그려놓는 화가 베어먼의 심정으로 경제가 되살아나기를 바라며 힘겹게 기업을 이끌어가고 있다.

이제 화염병을 던진 젊은 그들도 시위문화를 성숙된 모습으로 바꾸어 마지막 잎새가 떨어져 나가지 않게 거친 바람을 잠재워 줄 것을 간절히 호소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