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사망은 한국에서 재벌들의 역할이 재고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리처드 스티어즈 미국 오리건대 경영학 교수가 26일 월스트리트저널 논평을 통해 주장했다.

스티어즈 교수는 지난 99년 발간된 정주영 명예회장의 영어판 자서전 ''Made in Korea:Chung Ju Yung and the Rise of Hyundai''의 저자다.

스티어즈 교수는 논평에서 "지난 97년의 경제위기 당시 한국 재벌은 위기를 불러온 주범으로 공격을 받았지만 정 회장의 죽음을 계기로 많은 한국인들은 한국경제를 부흥시킨 것도 재벌이라는 사실을 되돌아보게 됐다"고 말했다.

스티어즈 교수는 "정 회장이 한국 현대사에 기여한 공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60년대초의 한국 상황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며 "한국은 당시 1인당 GNP(국민총생산)가 수단이나 가나와 같은 80달러에 불과했고 국민들은 길거리에서 기아에 허덕이고 있었으며 세계은행도 한국의 경제적 미래를 비관적으로 보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불과 20여년이 지난 85년 비즈니스 위크는 ''한국인이 달려오고 있다''는 헤드라인과 함께 현대의 엑셀자동차 사진을 1면에 싣고 한국의 미국 자동차시장 진출을 소개했다고 스티어즈 교수는 강조했다.

스티어즈 교수는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이런 발전상을 ''한강의 기적''이라고 평가했지만 정 회장은 자서전에서 "종교에는 기적이 일어날 수 있지만 정치나 경제에는 기적이 없으며 한국인들의 진취적인 기상이 성공의 동인"이라는 말을 했다고 소개했다.

스티어즈 교수는 이와 함께 정 회장이 지난 92년 한국 대통령선거에 출마했다고 소개하면서 "만약 정 회장이 당시 대선에서 승리했다면 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의 원조를 받지 않고도 최근의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이어 정 회장이 한반도의 평화정착을 위해 ''개인 대 개인'' 외교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한 몇 안되는 한국인 가운데 한 명이라고 평가하고 "김대중 대통령이 한반도 긴장 완화를 이끌어 낸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탔지만 정 회장의 노력이 없었다면 남북 교류가 시작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고 분석했다.

김상철 기자 che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