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어둠 속에서 집어 드는 신문이지만 요즘처럼 국민을 불안케 해본 적은 없을 터이다.

어제 대폭적인 개각을 단행했다.

매일같이 신문 1면을 도배하다시피 했던 ''총체적 난맥상''이라는 용어라든지, 국정이 파국을 치닫는 듯한 표현과 분위기를 띄우는 사설과 시론을 생각해 본다면 개각이라도 해야 마땅하다 싶었다.

개각을,그것도 10여명 넘게 했으니 우선은 새 자리를 보임받은 이들에게 축하해야 하고 힘을 북돋워 주어야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그간의 어수선했던 일들을 감안해 볼 때 어딘지 스산한 느낌이 드는게 사실이다.

그것은 왜 그럴까.

정부 말대로 국정을 쇄신하고, 운영의 효율을 높이고 개혁과제를 일관성있게 추진해 보겠다는 의도는 시비걸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동안의 국정이 쇄신이 필요할 정도로 ''난맥''이었고, ''효율''이 없었으며, ''일관성''이 없었다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혼란스러워지게 마련이다.

개각내용을 보면 난맥을 쇄신할 것 같지도 않고, 일관성도 일관성 나름이라고 평할 수 있겠다.

나아가 정치권에서 반 이상의 인물을 조달해 냈는데, 만일 또 쇄신할 일이 생기면 이제 누구를 앉힐 것이며,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제발 그런 일이 없도록 잘해 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어쨌거나 먼저 우려되는 것은 외교안보분야다.

5월 이후 답방과 관련한 북한측과의 교섭문제는 한.미정상회담 이후 틀을 유지하기 어렵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개각에서는 그대로 그 틀을 유지하겠다는 복안을 읽게 되니 더욱 불안해질 수도 있을 것 아닌가 한다.

한.미 공조에 문제가 생겼다면 의당 진로와 보폭을 조정해야지, 어떻게 그대로 강행하겠다는 것인가.

문외한인 경제통으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리고 경제문제, 나아가서 국민적 관심사인 의약분업, 의보재정통합, 연기금, 21세기 비전과 관련해서는 여러 사람이 바뀌었지만 면면이 그 사람들이 전에 같은 문제를 관여했었기 때문에 혼란스럽다.

딱 부러지게 정답을 외치다 여론에 밀려 그만두었던 사람이 다시 온다면, ''실수를 자인하고 제대로 길을 잡아 보라'' 하겠지만, 우리의 희미한 기억으로는 같은 개혁론자들이 일꾼만 바꾼 꼴이 아닌가 해 걱정이 많다.

바라건대 그런 일없이 소위 국난을 바로 잡아주기를 학수고대한다.

한때 환란 이후 ''신뢰성''이란 말이 시중에 회자된 적이 있다.

신뢰성이란 단어가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왔었으며 그후에도 신뢰성의 중요성은 더욱 더 커져 가고 있다.

이번 개각과도 무관할 수 없는 이 신뢰성이라는 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말이다.

난맥상이라던 국정을 쇄신하려면 신뢰성 없이는 안될 일이다.

그런데 이번 개각을 보니 엊그제까지 새천년민주당에 있던 사람이 자유민주연합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장관자리를 호언하더니 말대로 장관이 되었다.

여러 의혹을 받던 사람도 권력의 지근거리로 다시 찾아갔다.

좋게 본다면 이것은 개혁과제를 일관성있게 마무리하려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원래 정책이 흐트러진 것이 사람 때문도 아니고 정책내용이 잘못되어서도 아니고 다른 것이었다면 이건 얘기가 다르다.

본인의 얕은 소견으로는 근자의 국정실패는 정책과 관련한 철학 때문에 잘못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 시각에서 본다면 병을 고치기는커녕 병이 더 깊어져서 다음 개각 때는 맡길 자도, 맡을 자도 없겠구나 하는 걱정이 앞선다.

국정쇄신은 오로지 철학을 바꾸어야 가능한 것이다.

모든 것을 정부가 다 하려는 욕심이 병의 원인이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능력이 없다''하고 욕심을 버리고 듣는 자세를 가져야 혼란이 가라앉을 것이다.

그리고 학생 학부모 교육자 교사 환자 의사 약사 제약업자 기업인 관리 소비자들에게 책임을 묻고 맡기고 일을 나누면 된다.

정부가 손발을 다 묶어놓고 혼자 춤추고 장구를 치려 할 때에는 아무도 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정부는 심판자로 돌아가야지 코치나 구단주가 돼서는 안되는 것이다.

bkmin@cf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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