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환 < 과학기술부 장관 kyh21@kyh21.com >


빈곤의 한 세기를 국민과 함께 넘어온 경제인,서해바다를 막고 소떼를 몰고 휴전선을 넘던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우리 곁을 떠났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생애를 기억하며 한 주를 보냈다.

그는 숱한 일화를 남기고 갔다.

영욕의 한평생을 사는 동안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일을 이루고 많은 얘기를 남기게 되는가.

그런데 지난 한 주간 내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 잔영 하나.

굽을 다시 갈고 무수히 기워 신었다는,그래서 지금은 청운동에서 주인 없이 남아있는 22년생 구두 한 켤레.

''소비가 미덕''임을 몰랐을 리가 만무한 이 시대 거부(巨富)인 그가 남기고 간 낡고 빛바랜 구두 한 켤레.

이제는 기념관의 유품으로 남을 것인가.

모든 국민들이 정 회장처럼 검소하게 지낸다면 구두공장은 무얼 먹고 살까.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여름 나는 청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그때 화양계곡이 있는 충북 괴산군 청천면에 계시던 아버지께서 하숙방에 찾아오셨다.

그날 따라 날씨가 무척 더웠다.

저녁식사를 마치자마자 아버지는 중앙공원에 바람이나 쐬러 가자고 하셨다.

오복당에 들러 ''아이스케키''도 먹고….

"아니 이게 웬 떡이람.아버지가 도대체 이런 세련된 제안을 하시다니…" 날씨 때문인지 제과점 안은 초만원이었다.

주문받으러 아가씨가 다가왔다.

"두 개" 나는 놀랐다.

내가 돌아보니 아버지는 평온(?)한 얼굴이다.

"두 접시 말씀하시는 거죠?" "아니 두 개" 아버지는 조금 멋쩍은 듯 내 눈치를 흘끔 보면서 더 큰 목소리로 말했다.

이 무슨 창피란 말인가.

오복당 점원은 하는 수 없이 커다란 접시에 도란도란 누워있는 아버지와 나의 ''일용할 양식 두 개''를 내려놓고 뒤돌아 가버렸다.

"지독한 아버지…"

청운동 정 회장의 문상을 마치고 돌아서 골목길을 나오는데 ''아이스케키''의 추억이 생각났다.

며칠 뒤 천당 어느 양지녘에서 22년생 구두를 신은 초등학교 졸업생 정 회장과 ''아이스케키''두 개를 손에 든 무학의 아버지가 장기판 앞에 쪼그려 앉아있는 모습이 떠올랐다.

"장군,멍군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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