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없이 대책회의 한다고 뚜렷한 대책이 나오겠습니까"

요즘 각 부처 장관들이 ''곪아터진 현안''들을 수습하느라 정부 중앙청사를 빈번히 드나드는 것을 두고 한 관료가 조심스레 내뱉은 말이다.

총리 주재로 잇따라 열린 새만금 대책회의, 신공항 점검회의, 구제역 대책회의, 의보재정 대책회의 등에 대한 회의감이 다분히 담긴 얘기다.

또 다른 관료는 "장관들이 머리를 맞대고 현안을 점검하고 갑론을박하는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그렇지만 문제가 불거지기 전에 왜 이런 회의를 갖지 않았느냐"고 꼬집었다.

여론의 비판이 거세지고 대통령의 지시가 있고 나서야 ''대책회의''란 거창한 이름을 내세워 호들갑을 떤다고 일침을 가했다.

의약분업 관련 회의가 그 대표적인 예다.

김대중 대통령이 "내 책임이 크다"며 종합 대책수립을 지시하자 총리실은 물론 관련부처들이 회의 일정을 잡느라 법석을 떨었다.

지난 19일 총리실 회의와 21일 국무회의에서 이 주제를 다룬데 이어 24일 총리주재 관계 장관회의가 열리고 26일 당정회의, 28일에는 고위당정회의가 대기하고 있다.

지난 16일 열렸던 신공항 개항 점검회의도 마찬가지다.

외국 공항전문 컨설팅사가 ''인천공항 개항 재검토''를 요청하자 총리 주재회의가 급조됐다.

그리고 예상대로 ''문제없다''는 결론을 내린후 국민무마용으로 공항 대중교통료 인하를 발표했다.

그러나 대책회의를 준비했던 한 관계자는 "솔직히 살얼음 판을 걷는 기분이다"며 "개항 후 조금이라도 불미스런 일이 발생하면 ''화''를 면치 못할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결국 정부 대책회의란 이미 일선 부처가 발표한 내용을 빈손으로 참석한 장관들 입으로 한번 더 확인하는게 고작인 셈이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상황에서 실타래처럼 얽힌 문제를 회의 한두차례로 풀겠다는 발상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회의 많은 집은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초가삼간 다 태우고 불을 꺼 봐야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라는 한 민간위원의 조소섞인 지적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게 작금의 현실이다.

홍영식 정치부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