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15일 오전9시 서울 한미은행 본점.

이날 창립기념일을 맞은 이 은행 노조는 각 사무실에 ''임을 위한 행진곡''을 방송으로 내보냈다.

마침 한미은행 대주주인 미국계 펀드 칼라일이 신동혁 행장을 퇴진시키고 젊은 새 행장을 영입하려는 시도에 노조가 전면 투쟁을 선언한 상황이었다.

그래서인지 노조의 투쟁가는 예사롭지 않게 들렸다.

이번 사태는 한미은행 지분 40%를 가진 칼라일이 지난 주말 신 행장 교체를 통보하면서 촉발됐다.

노조와 직원들은 작년 11월 단순 투자목적으로 5천5백억원을 투자한 칼라일이 이제와서 행장을 바꿔 경영권을 장악하려는 것은 말도 안된다며 흥분했다.

노조는 "칼라일이 선진경영구조를 명분으로 신 행장을 이사회 의장으로 물러나게 하고 새 행장을 데려 오려는 것은 대주주의 횡포"라며 총력 투쟁을 선언했다.

이런 상황에서 직원들은 일손이 잡힐리 없었다.

한 행원은 "행장이 바뀌면 지난 1월 정기인사는 무시되고 처음부터 조직개편과 인사를 다시 할 것 아니냐"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물론 칼라일의 행장 교체 움직임은 법적으론 문제가 없다.

은행가치를 높이기 위해 필요하다면 임기중에라도 행장을 바꿀 수 있는게 대주주의 권한이다.

그러나 이같은 원칙논리는 "국내 우량은행이 외국자본에 의해 좌지우지돼선 안된다"는 한국적 정서의 벽을 만난 셈이다.

어쨌든 한미은행장 교체 논란은 외환위기 이후 국내 금융회사에 대거 진입한 외국계 자본과 기존 체제와의 마찰로 보는 시각이 많다.

뉴브리지캐피털이 인수한 제일은행이 정부의 정책협조 요청을 거부한 것이나 KOL(옛 리젠트그룹)과 일은증권이 빚고 있는 갈등도 비슷한 맥락이다.

주주의 권한 등 ''원칙''을 강조하는 외국인과 그래도 우리 식을 존중해달라는 ''정서''가 충돌한 결과다.

격변의 와중에 새롭게 태어나는 한국 금융회사의 진통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한미은행장 교체 여부는 더욱 주목된다.

차병석 금융부 기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