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주택은행 합병이 기정 사실화돼 있다.

이들 은행의 합병은 국내 은행권 총자산의 33%, 가계금융의 60%를 차지하는 독점적 은행을 출현시켜 앞으로 국민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정부는 줄곧 ''은행 대형화는 세계적 추세이므로 우리나라도 세계적 규모의 은행을 가져야 한다''고 국민을 설득해왔다.

심지어 ''대형은행이 있었다면 IMF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까지도 서슴지 않고 있다.

그러나 과거 재벌의 덩치 키우기와 달리 은행대형화에는 이렇다 할 타당성이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재벌 대기업은 해외시장에 나가 선진국 대기업들과 경쟁을 벌이지 않으면 안되었다.

약체의 몸집으로는 도저히 싸움이 안되는 경우였기에 국가적으로 자원을 집중시켜 이들을 밀어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국민.주택은행이 통합하게 되면 대체로 소매금융에 치중할 것이다.

국제금융시장에 진출해 ''포천 5백대 기업''을 고객으로 끌어들이고자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으로는 결코 기대할 수 없다.

설사 의욕이 있더라도 최소한의 리스크 관리능력조차 축적돼 있지 못하다는 현실에 비추어 타당한 선택일 수 없다.

또 재벌 대기업은 외견상 사적(私的) 소유의 형태를 띠고 있었지만,상당수준 국가의 통제가 가능한 국적기업이었다.

국가가 필요로 한다면 이윤이 나지 않더라도 출혈수출을 통해 외화벌이를 열심히 하지 않았던가.

이것이 재벌체제를 지탱해온 국민적 합의였다.

그러나 국민.주택은행이 합병하게 되면, 이는 철저히 외국인 대주주의 영향권하에 들어가게 된다.

외국인 주주의 총지분은 두 은행 똑같이 이미 65%에 달해 있다.

국민은행의 대주주인 골드만삭스가 전환사채를 주식으로 전환하고,주택은행의 대주주인 ING베어링이 기존의 투자협약에 의거해 합병은행의 보유지분을 10%로 끌어올리면, 양대 외국인 대주주는 총 20%의 소유지분을 근거로 합병은행의 경영권을 장악하게 된다.

이들에게는 국가이익의 문제는 ''논외''가 되고 은행 자체의 수익성만이 ''지상명제''가 된다.

여기에서 혹자는 주식회사인 은행이 수익성에 열중하는 것이 뭐 잘못된 것이냐고 반박할 수 있다.

과연 그럴까.

은행엔 ''국민경제의 안정장치''라는 공익적 사명이 부여되어 있다는 점에서 일반 민간기업과 크게 다르다.

가까운 예로 최근 정부는 산업은행을 창구로 ''회사채 신속인수제도''를 도입함으로써 마비상태에 빠진 회사채시장을 간신히 회생시켰다.

이로써 현대건설 현대전자 등 초대형 기업의 도산사태를 막을 수 있었다.

싱가포르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개방경제체제이지만, 1999년 5월까지 외국인의 은행지분 소유상한을 40%로 묶어두었다.

70년대 초부터 국제금융센터를 가동시켜온 나라로선 극히 이율배반적인 정책이었지만, 이 덕분에 싱가포르는 4대 은행의 국적을 유지하고 있다.

3월 말로 두 은행간 합병계약이 체결되면 명실공히 외자지배의 초대형은행이 탄생한다.

정부로선 새 은행이 규모에 걸맞게 종합금융기관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하겠지만, 이는 외자의 의사와 어긋난다.

그렇다고 은행의 전략을 유인할 수 있는 힘이 정부에 있는 것도 아니다.

2조∼3조원에 불과한 한국은행의 총액한도대출로 1백60조 은행의 전략을 바꾼다는 것은 난센스다.

또 10%도 안되는 정부 보유지분으로 65%의 외국자본과 맞선다는 것도 웃음거리다.

금융감독원이 나서 각종 업무규제, 자금운용규제를 취하려 할 경우 국제금융시장에서 막강한 가격결정권을 행사하고 있는 대주주가 이를 묵과할 리 없다.

경쟁력이란 본질적으로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았을 때 키워지는 것이다.

독점적 시장지배력을 통해 초과이윤을 달성한 것이 경쟁력일 수 없다.

중복된 점포와 인원을 마구 잘라내 이윤을 짜낸 것도 경쟁력일 수 없다.

흔히 한국의 은행과포화 문제를 지적하고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차별성 없는 지점에 관한 것일 뿐 유효 경쟁구도를 조성하기엔 한국의 은행 수는 오히려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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