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생활에서 얻은 체화(體化)된 지식을 무기삼아 변호사로서의 인생도 새롭게 개척할 생각입니다"

강병국(43) 변호사의 이력은 색다른 경력자가 많기로 소문난 연수원30기 가운데에서도 단연 돋보인다.

굳이 표현하자면 "기자출신 변호사"라는 수식어가 어울린다.

하지만 이렇게 단순화하기엔 그가 걸어온 인생에 주름이 너무 많다.

영문학도였던 대학시절 강 변호사의 꿈은 원고지에 세상을 창조하는 직업인 "작가"였다.

그러나 부친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문학에 대한 열망을 접을 수 밖에 없었다.

1982년 경향신문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사회부 문화부 경제부를 거쳤다.

혼란스런 80년대에 기자의 삶은 쉽지 않았다.

사실 그대로를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일이 기자의 의무이자 특권이건만 눈앞을 가리는 유.무형의 가리개는 어찌 그리 많은지.

기자로서 틀이 잡혀갈 무렵인 88년 민주화 바람을 타고 생겨나기 시작한 "언론노조"활동에 참여하게 됐다.

그러나 민주화 바람도 언론의 독립과 자유를 보장하진 못했다.

노조활동을 하던 동료들이 줄줄이 해고됐다.

이렇게 시작된 노조와의 인연은 사표를 던지게 된 93년까지 이어졌다.

새출발을 하기엔 너무 늦은 나이.

강 변호사만을 바라보는 가족들을 위해 안정된 직업이 필요했다.

2년이면 끝날줄 알았던 사법고시 합격의 길이 길어져 5년이 꼬박 걸렸다.

올해 연수원을 마치고 변호사로서는 막 걸음을 시작한 셈이지만 기자생활 10년에 노조활동을 5년이나 한 덕분에 노동과 언론관련 분야에 대해서만은 자신감을 갖고 있다.

강 변호사는 "전문분야를 개척해야 살 수 있는 시대라 자연스레 노동과 언론 분야를 선택했지만 돈과는 거리가 멀어 한 분야를 더 추가했다"며 껄껄 웃었다.

그가 추가로 선택한 분야는 환경분쟁.마산이 고향인 그에겐 고향 앞바다의 오염을 비롯한 국토의 환경파괴가 남의 일 같지 않았기 때문.

선택과목마저 고향의 추억과 결부시킨 강 변호사.

그에게 있어 육법전서는 단순한 법률이론서가 아니라 경험이 육화된 "삶의 나침반"이다.

정대인 기자 bigm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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