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병우 < LG-OTIS 사장 bob.jang@otis.co.kr >

''남산에서 돌을 던지면 김씨,이씨,박씨 중 한 사람이 맞는다''

통계를 보더라도 이 세 성(姓)씨가 우리나라 인구의 45%에 육박한다고 하니 이런 우스갯소리가 나올 만하다.

또 지식인은 연륜이 쌓이면 으레 자기의 본명 외에 아호(雅號)를 갖는다.

아무튼 김씨,이씨,박씨의 수가 많아 혼동되니 그럴듯한 아호라도 갖고 있으면 품위도 있어 보이고 같은 성끼리도 차별화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서양에선 우리의 아호에 해당하는 펜네임(필명)을 가진 사람이 극히 드물다.

이는 서양인이 우리들보다 풍류를 덜 즐긴다는 방증이다.

나는 김씨,이씨,박씨가 아니다.

사전에 나오는 아호의 정의(定義)인 ''문인 학자 화가 등이 본명 외에 갖는 풍아(風雅)한 칭호''를 가질만한 자격이 전혀 없는 인생이지만 영어로 된 약칭을 하나 갖고 있다.

북미 수출을 담당했던 과장시절 직원들이 지어준 이름 ''밥(Bob)''이다.

풍류가 깃들인 아호도 아닌 데다 ''밥''이라는 발음이 풍기는 장난기에 의심이 갔지만 이니셜이 ''B''이고 이름은 본인이 짓는 것이 아니라고 우기는 바람에 울며겨자먹기로 받아들였던 터다.

어쨌든 갓 쓰고 넥타이 맨 듯한 기분으로 해외사업을 하면서 사용한 지 벌써 20년이 지난 지금은 매우 친숙해졌다.

특히 요즘같은 글로벌시대에 영어 약칭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매우 실용적이고 민주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내외 교신이 거의 대부분 e메일로 이뤄지는 때에 ''밥 장(Bob Jang)''이라는 매우 희귀한(?) 호칭으로 금방 구분이 되고 외우기 편하니 실용적이다.

또 상대방이 누구든 서로 상대의 영어 약칭으로 부르는 순간부터 권위의식은 사라지고 친밀감이 생기니 민주적이다.

나는 요즈음 기회있을 때마다 직원들에게 쉬운 영어 약자 이름을 권하고 있다.

심지어 내가 이름을 지어 e메일 주소록의 이름을 바꾸고 나서 통보하기까지 한다.

대부분 볼멘소리로 불평하지만 이에 대한 나의 대답은 한결같다.

"이 부장,아니 이젠 데이비드 리(David Lee).이니셜이 ''D''이고 또 이름이라는 것은 본인이 짓는 것이 아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