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봉진 < 워싱턴 특파원 >

최근 뉴욕타임스는 중국에 핵무기 설계기술(암호명:W-88)을 제공했다는 스파이 혐의로 9개월 동안이나 독방 구속되었다가 지난해 9월 무혐의로 풀려난 로스 알라모스 핵연구소의 중국인 과학자 웬호 리 수사에 대한 경과를 다시 한번 보도했다.

"웬호 리는 미국사회의 인종편견, 주변인물들의 예단, 수사기관의 나태와 직무유기, 정치권의 무책임한 ''한건주의''가 빚어낸 희생양(犧牲羊)이었다"는 것이 이번 뉴욕타임스 기사의 골자다.

웬호 리에 대한 미국 수사기관의 조사는 증거불충분으로 수년간 답보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중국이 미국의 핵기술을 절취했다"는 정부관료의 말을 인용한 뉴욕타임스의 99년 3월6일자 보도는 웬호 리에 대한 수사를 무리하게 몰고 가는 요인이 됐고 결국 뉴욕타임스 또한 웬호 리에 대한 인권침해와 시련을 증폭시킨 주체였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의식, 뉴욕타임스는 웬호 리 사건에 대한 재검증에 들어가겠다고 약속했고 그 공약을 지키기 위해 지난 4개월 동안 무려 7명의 기자를 관계자 인터뷰, 서류검증, 현장확인 등에 집중 배치했다.

그 결과가 지난 4일과 5일 두 번에 걸친 1면 기사와 내지(內紙) 5개면을 할애한 뉴욕타임스의 ''양심선언''이자 ''고해성사''성 기사다.

때맞춰 한국에서는 언론이 개혁되어야 한다는 논의가 뜨거운 모양이다.

그 당위(當爲)는 누구나 인정하는 일이다.

그러나 언론개혁의 한 수단으로 비쳐지고 있는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는 그 타이밍과 방식에 적지 않은 문제점이 있다.

물론 정부는 세무조사와 언론개혁은 별개의 문제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사람들의 인식에는 ''세무조사=언론개혁''이라는 등식이 자리 잡았다.

이런 의미에서 정부의 세무조사는 국민설득에 실패한 것이고 ''참외밭에서 신발끈을 매지 말라''는 교훈도 제대로 소화·실천하지 못한 선례로 남을 공산이 커졌다.

특히 안정남 국세청장은 국회에서 이번 세무조사가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은 것"이라고 증언했다.

우리사회의 역학구조로 보아 위증(僞證)가능성이 높은 이같은 대목에서도 우리사회는 무감각하게 넘어간다.

미국 같았으면 정치인 기자할 것 없이 그 위증여부를 가리자고 벌떼처럼 대들었을 것이 뻔하다.

미국에서 위증은 큰 죄다.

닉슨과 클린턴은 거짓말 때문에 혼이 난 대통령들이다.

''거짓 없는 사회의 구현''이야말로 언론개혁의 본질이자 동의어인지 모른다.

물론 언론개혁은 기자들의 자기성찰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부도설(說)'' 한 줄 보도에 기업의 생명이 왔다갔다 할 수 있다는 개연성을 기자들이 항상 염두에 두지 않는 한 언론개혁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다른 신문들과 엇비슷한 논조를 내놓아야 ''왕따''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면책성 보도'' 태도와 ''벌거벗은 임금님 행진대열''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한 언론개혁은 아무 의미가 없다.

결국 언론개혁은 언론인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사회 전체의 철학과 양심 자체도 함께 바뀌는 ''유기체적 변혁''이어야 가능한 일이다.

언론은 그 사회의 민도(民度)를 반영하는 ''유기체적 거울''이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우리에게 언론개혁의 본질은 ''자발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언론개혁과 관련, 정부가 따로 할 수 있는 역할은 자생력없는 언론을 즉각 퇴출시킬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시장경제체제를 구축하는 일 이외에는 없다.

친여.반여(親與.反與)를 가려 살려주고 죽이려 들면 그것이 바로 ''비(非)시장''이며 반개혁이다.

시장이 제대로 기능하고 사회가 투명해지면 영양을 공급하는 ''식용버섯 언론''과 국민을 죽이는 ''독버섯 언론''은 저절로 가려진다.

yangbongjin@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