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난 한국부동산신탁의 처리방안을 결정하기 위해 12일 오후 6시께 시작된 채권단회의가 끝난 것은 밤 9시 무렵이었다.

회의를 주재했던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의 주원태 상무는 "일부 기관이 불참하거나 반대했지만 이들도 나중에 동의할 것이라는 전제아래 법적조치(청산 법정관리 등)를 6개월간 유예키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네번에 걸친 회의에서야 정부가 제안했던 ''채권행사 유예방안''을 일단 통과시킨 것이다.

하지만 조건부 통과라는 점에서 채권금융기관간 이견조율이 걸림돌로 남게 됐다.

반대의사를 던진 기관들이 끝까지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는다면 한부신의 처리방안은 원점에서부터 다시 검토해야 한다.

이날 회의에 불참한 금융기관은 동양종금이었다.

또 주택은행과 신한은행도 참석은 했지만 법적조치 유예 방안에는 반대했다.

이들의 입장은 단호하다.

"부도가 난 회사에 대해 채권행사를 늦추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사실 부도난 회사를 억지로 끌고가려는 방안 자체가 전례 없는 기상천외한 발상이다.

불가피성도 없진 않다.

청산될 경우 피해를 보는 입주예정자는 2만여명에 달한다.

투자자도 ''공기업''이라는 보증수표를 믿고 돈을 맡긴 서민들이 대부분이다.

"한부신을 당장 법적처리하면 수익성있는 사업장도 문을 닫게 되고 입주예정자들의 피해도 불가피하다"는 정부측 주장을 민심달래기 차원으로만 보기 어려운 것도 이래서다.

하지만 한부신 처리과정은 결국 공기업의 경영실패 책임을 금융기관에만 지우고 있다는 의구심만 키우고 있다.

정부는 한부신의 투자자에 대해 자기책임 원칙을 강조하고 손실보전은 없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부신에 채권을 행사해 손실을 줄이려는 금융기관들의 발목을 붙잡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더욱이 앞으로는 수익성을 중시하겠다는 금융당국의 방침까지 나온 상황에서 말이다.

"정부가 손실보전을 해줄 수 없다면서 채권단에는 지원하라고 압력을 가하는 것은 책임회피에 불과하다"(채권단 관계자)는 불만이 커지고 있다.

김준현 경제부 기자 kim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