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이 차기 회장선출을 놓고 우여곡절 끝에 김각중 현 회장의 유임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은 한국재계의 미묘한 현주소를 그대로 말해준 것이다.

우선 이건희 삼성회장,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 회장등 ''오너''총수들이 한결같이 고사하는 바람에 김 회장의 유임외에는 다른 대안을 찾기가 힘들었다.

총수들은 얼마전 진념 재경부 장관이 ''전경련은 대기업 이기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공언한데서 보듯이 대기업그룹에 대한 외부의 곱지않은 시각등을 의식한 나머지 ''오로지 경영에만 전념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지 오래됐다.

이런 상황에서 손길승 SK 회장,유상부 포철 회장등이 거명됐지만 이들 역시 ''오너가 회장을 맡아온 전경련의 전통''등을 의식해 선뜻 나서기가 어려웠다.

그 결과 ''김 회장 유임카드''가 굳어지게 된 것이다.

김각중 현 회장의 경우 전임 김우중 회장이 대우그룹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사태로 물러난 99년11월이후 1년3개월간 당초 기대이상으로 회장직을 무리없이 수행해온 점도 ''유임''에 크게 작용했다.

차기 회장 선출 실무를 책임진 손병부 부회장은 연초부터 재계총수들을 개발 접촉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진통을 겪었다.

무엇보다 "적임자는 있으나 자임자는 없는" 상황이었다.

한때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이 차기 회장으로 거론됐으나 본인이 "자동차 경영전문인으로서 전념할 때"라며 거부의사를 전경련에 나타냈다.

지난달엔 이건희 삼성 회장이 건강한 모습으로 17개월만에 전경련 월례 회장단 회의에 모습을 나타내 전경련 회장설이 돌았으나 "할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최근엔 손길승 SK회장이 전문경영인 출신으로서 전경련 회장이 되면 오너이익을 대변해온 전경련의 역할을 탈바꿈시키기에 적임이라는 일부의 예상이 나왔다.

그러나 "비오너가 전경련 회장이 될 경우 오너들의 전경련에 대한 지원이 약해질 수 있다"는 전경련 "위상 약화설"에 밀려 손 회장 카드는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김승연(49) 한화 회장과 조석래 효성 회장이 전경련 회장에 큰 관심을 가진 것으로 전해졌으나 각각 "아직 젊다" "지지기반이 약하다"는 대세에 밀린 것으로 재계는 해석했다.

결국 4대 그룹 총수가 아니면서 원로급 경영인으로서 전경련을 원만하게 이끌어온 김각중 현 회장의 유임쪽으로 재계는 결론을 냈다.

정구학 기자 c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