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병우 < LG-OTIS 사장 bob.jang@otis.co.kr >

요즘 자주 받는 질문 중 하나가 미국기업과 합작회사로 거듭 태어난 지 1년이 지났는데 무엇이 달라졌느냐는 것이다.

''성과주의 문화접목''''현금흐름 중심의 경영''등 분명히 긍정적 ''변화''가 있었지만 동전의 양면같이 이에 수반되는,주로 문화적 이질감에서 느끼는 ''불편''또한 많았다.

그런데 사소하지만 자못 절실한 불편이 있다.

그것은 수(數)의 단위 명칭에 따른 불편이다.

지난주 1월 경영성과 발표 때의 에피소드다.

우리 회사에서는 외국인 임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회의 자료를 반드시 영문으로 작성하고 영어나 한국어로 발표하게 돼 있다.

김모 대리가 회의 때 "오백천달러의 경비가 투입되고…"라고 보고했다.

모두가 의아해했다.

가리키는 숫자를 보고서야 50만(500,000)달러를 ''오백천달러''라고 서구식으로 읽은 것을 알았다.

그러나 가만히 살펴보면 김 대리가 읽은 방식이 좀 더 효율적이고 편리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동양의 수와 단위명은 십,백,천까지는 서구 것과 일치하지만 그 다음의 만(萬)과 억(億)은 million,billion과 서로 어긋난다.

우리나라에서는 수를 쓸 때는 으레 서구식을 따라 세 자리씩 끊어 쓰면서 읽을 때는 동양식으로 읽는다.

이것은 분명히 모순이다.

''만''''억''으로 읽으려면 동양식으로 네 자리씩 끊어 쓰고 지금처럼 세 자리씩 끊어서 기록하려면 김 대리처럼 단위명을 천,백만,십억으로 읽어야 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다시 말해 이런 모순을 없애려면 우리나라가 도량형제에서 범세계적 표준인 미터제를 채택하고 단기를 서기로 바꾸어 쓰듯이 수의 명칭 중에 ''만''과 ''억''을 없애고 million,billion에 해당하는 한자(漢子)를 제정해 서구식으로 쓰고 읽을 수밖에 없다.

만약 이것이 해결된다면 5만을 50천,50만을 5백천,5백만을 새로이 정해진 예를 들면 5방(方)으로 쓰고 읽게 될 것이다.

물론 당분간은 익숙지 않아 혼란이 있겠지만 미국에서도 ''만''에 해당되는 myriad가 셈하는데 불편하다는 이유로 없애버린 역사가 있다.

수학자도 아니고 국제기록법에 문외한인 주제에 하는 주장이라 전혀 권위가 없지만 찬반(贊反)은 어떻든 누구든지 한번쯤 재고해 볼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한담이라고 미리 말을 했다.

혹시나 배외사상(徘外思想) 신봉론자라고 오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해외생활을 십수년했지만 나는 우리나라 토종(土種)임을 늘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사실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