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73년 11월 한신대 학생들이 10월 유신에 반대해 삭발을 하자 교수들이 학생들의 발을 닦아주는 세족식(洗足式) 광경이 보도된 적이 있다.

교수들이 제자들의 발을 씻김으로써 학생들을 사랑하고 섬기는 자세를 보여 유신반대의 의지를 표명한 상징적 의식이었다.

세족식은 가톨릭에서 부활절 이전 목요일에 교황이 평신도의 발을 씻어주는 의식이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히기 전날밤 최후의 만찬에 앞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준 것에서 유래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이것을 위선이라고 배척해 개신교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성경주석학자 톰슨의 해석에 따르면 예수의 이런 행위는 제자들 가운데 배신자가 나오더라도 용서하는,어느 누구도 포기할 수 없는 목자의 사랑을 몸소 실천해 보여준 것이라고 한다.

오늘날 세족식은 기독교신자가 아닌 젊은이들에게도 사랑과 봉사의 정신을 나타내는 상징적 행사로 알려져 있다.

일반적으로 의례란 외적인 형식으로 부차적인 것이고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내면적 진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사회학자들은 의례가 상징적인 것이긴 해도 집단의 결속을 강화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이론을 내놓았다.

제사처럼 번잡해 보이는 의례가 여전히 이어져오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인지 모른다.

동부전선 최전방 한 부대의 대대장을 비롯한 간부들이 신병신고식때 병사의 발을 씻어주는 세족식을 열어오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져 화제가 되고 있다.

물론 특정 종교의 의례와는 관계가 없다.

새내기 병사들의 긴장감을 풀어줘 새 환경에 빨리 적응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한다.

나도 옛날에 당했으니 너도 당해보라는 신병길들이기식의 혹독한 통과의례를 치러야 했던 과거 군복무자들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신세대가 주축이 된 21세기 병영은 달라져야 마땅하다.

하지만 세족식이 효과만점이라고 해서 다른 부대로까지 확산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획일화되면 세족식도 의미없는 퍼포먼스나 이벤트로 전락해 신세대 군인의 관심밖으로 밀려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