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체코의 프라하에서 열린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 합동연례총회에서는 향후 IMF의 역할에 대한 심도있는 논의가 이뤄졌다.

''인플레이션 없는 성장''을 도모하고 국제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을 마련하는 중심축 역할을 담당하며 다른 금융기관들과의 협력을 바탕으로 항상 경험과 대화를 통해 배우려는 자세를 가진 ''깨어있는'' 기관이 되는 것 등이 IMF가 추구해야 할 핵심 목표로 지적됐다.

최근 본인은 싱가포르를 비롯한 아시아 지역을 순방하면서 이러한 비전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다시 한번 깨달았다.

싱가포르에서는 아시아 금융시장을 움직이는 거물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일본에서도 많은 금융·기업계 인사와 정부관료들을 접해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 경제 전망과 금융개혁을 가로막는 난제들에 대해 귀중한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지난해는 미국 경제의 엄청난 팽창으로 세계 경제가 강한 성장세를 보였다.

하지만 최근 수년동안 예외적으로 높은 수치를 기록했던 미국의 성장률이 언제까지나 계속될 수는 없는 법이고 따라서 연착륙에 어느 정도 제동이 걸리는 것은 불가피했다.

최근 수개월동안 나타난 미국의 경기둔화세는 아마 전 세계에 충격을 줬을 것이다.

그러나 여러가지 경기지표들을 보면 아직도 연착륙 가능성은 남아 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과도한 낙관론에 들떠 있다가 갑자기 비관론으로 돌아서는 자세는 지양돼야 한다.

올 상반기중 미국 경제의 둔화세는 예상했던 것보다 더 심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연중에 미국 경제는 반드시 성장세로 다시 돌아설 것이다.

IMF는 올해 미국 경제성장률을 2.5% 수준으로 내다보고 있다.

미 연준리(FRB)는 이미 적절한 시기에 금리를 내림으로써 연착륙으로의 길을 어느 정도 터줬다.

게다가 앞으로도 경기성장을 지속시키기 위해 통화나 재정정책의 조정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물론 아시아 금융계의 우려는 당연하다.

미국의 경기둔화는 아시아 지역에 영향을 끼칠 게 분명하다.

특히 그 충격은 대미 무역 의존도가 높은 나라들,특히 전자제품을 대량수출하는 아시아 신흥국들에 더욱 클 것이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볼 때 아시아 경제권의 회복세가 궤도를 벗어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아시아 지역은 이미 지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거시경제적 펀더멘털을 많이 강화했기 때문이다.

중국과 인도의 건실한 성장이 아시아 지역을 안정시키는데 한 몫을 담당하고 있다.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지역 전체의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8%에서 올해는 5%선이 될 것으로 예측된다.

이 정도 차이는 ''둔화''라기보다 ''정상화''로 보는 편이 맞을 것 같다.

아시아 경제에 중요한 것은 성장률이 아니라 구조조정이 얼마나 제대로 이뤄지고 있느냐는 문제다.

일본은 빠른 속도는 아니더라도 회복세를 계속 이어나갈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완만한 성장세는 아시아 지역 경제의 안정에도 기여할 것이다.

필요하다면 더 빠른 회복을 위해 거시경제정책을 조정할 여지는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구조조정이다.

금융계와 기업계의 구조조정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할 것이다.

유럽 지역은 확실히 좋아지고 있다.

펀더멘털이 눈에 띄게 튼튼해졌고 세제개혁이 적시에 이뤄지고 있다.

따라서 올해 유럽은 작년에 이어 호경기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실업률이 여전히 높고 노동시장이 경색돼 있는 것은 문제다.

정리=고성연 기자 amaz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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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호르스트 쾰러 IMF 총재가 최근 일본 프레스클럽에서 행한 연설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