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누가 무슨 말을 하든지 무슨 글을 쓰든지 듣거나 보지 않고 그 뒤에 무슨 딴 흑막이 있는가 하고 찾으려 합니다. 동지라 친구라 하고 무엇을 같이 하기를 간청하더라도 이것이 또 무슨 협잡이나 아닌가 하고 참마음으로 응하지 아니합니다"

도산(島山) 안창호(安昌浩)는 ''동포에게 고하는 글''(1924년 베이징)에서 서로 신뢰하지 못하는 당시 우리 사회를 이렇게 표현해 놓았다.

이민족의 지배를 받던 때였으니 사회 풍조가 그럴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 글에서 그는 정당한 계획과 노력을 하지 않고 요행 수만 바라는 민족성을 지적하면서 개개인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거짓없이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모든 일에 정성을 다해야 진(眞)과 정(正)에 기초한 신뢰사회, 성숙한 사회가 이룩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도산사상의 요체인 무실(務實)역행(力行)이 압축된 글이다.

엊그제 ''성숙한 사회가꾸기 모임''이 창립총회를 갖고 출범했다.

윤리학자 김태길(金泰吉) 교수 등 원로 14명이 발기해 만든 시민단체다.

반칙사회를 신뢰사회로 바꿔 나가는 시민운동을 전개해 나간다는 것이 모임의 목표이고 남의 잘못을 파헤치는 공격적인 설득 방식이 아니라 지도급 인사들이 먼저 실천해 사회의 기초부터 세우겠다는 실천운동이다.

모임의 목표나 실천방법이 어쩌면 그렇게 도산의 생각과 흡사한지 70여년전이나 지금이나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우리의 처지가 안쓰럽다.

회원의 기본생활수칙에는 역으로 자기가 한 말에 책임 안지기, 사치스런 생활, 기초질서 무시, 탈세, 뇌물 주고 받기 등 요즘 우리 사회의 잘못된 풍조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풍속이란 원래 상풍하속(上風下俗)의 준말이다.

풍(風) 속에는 대민교화의 뜻이 숨어 있고 속(俗)에는 이를 본받는다는 의미가 깔려 있다.

사회지도층의 솔선수범이 풍속이 되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도 없겠지만 과거의 예로 미루어 그처럼 실천이 어려운 일도 없다.

모처럼 사회의 기본과 원칙이 강조되고 있는 때인 만큼 회원들의 무실 역행에 거는 기대가 자못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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