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 아울렛의 생활용품 전문점인 모던하우스에서 일하고 있는 김선미(34) 팀장.

8년째 주방용품 MD로 활동하는 동안 그만의 독특한 버릇이 생겼다.

어느 식당에 가든 마음에 드는 그릇을 발견하면 지체없이 그 그릇에 담긴 음식을 딴 곳에 덜고 뒤집어 본다.

그릇 밑면에 적혀있는 제조업체 명과 연락처를 수첩에 적어야만 마음이 놓이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그의 수첩에는 국내외 1천여 곳이 넘는 주방용품 업체들의 연락처들이 빼곡히 적혀있다.

김 팀장은 "수십만가지 상품중에 자신이 기획한 제품이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도록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하고 그만큼 스릴과 만족도 얻을 수 있는 직업이 MD"라고 말한다.

MD는 머천다이저(Merchandiser)의 약자다.

일반인들은 MD를 단순한 구매담당자로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MD는 적게는 수백만원 크게는 수백억원 규모의 제품 기획에서부터 구입 판매 재고관리까지 총괄적으로 책임지는 일종의 "큰손"들이다.

때문에 업계에서 MD는 "뭐든지 다한다"의 약자로 통용되곤 한다.

80년대 중반 MD라는 개념이 국내에 처음 도입된 곳은 의류업계.

하지만 4~5년전부터는 국내 유통업계에서도 MD들이 "유통산업의 꽃"이라 불리우며 큰 활약을 하고 있다.


<>MD의 세계=MD의 하루 업무는 각 매장별로 파악된 전일 매출과 재고를 검토하고 분석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어 분석된 결과를 토대로 그날 필요한 만큼의 제품 물량을 발주하다보면 어느새 오전 시간이 지나간다.

오후부터는 직접 백화점과 재래시장 등지를 뛰어다니며 시장 조사에 들어간다.

상품을 생산하는 납품업체들과의 미팅도 빼놓을 수 없는 하루 일과다.

하루평균 4시간의 업체 미팅은 기본.

저녁 때가 되면 세계 각국의 거래업체들과 팩스 전화를 통한 구매 상담이 이어진다.

MD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역시 소비자들이 어떤 제품을 원하는 지를 파악하고 가장 싼 가격에 소비자들에게 그 제품을 공급하는데 있다.

판매 현장에서 누구보다 직접 고객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값싸고 품질 좋은 상품을 발굴하기 위해서 1년의 절반 이상을 국내외 출장으로 보내기도 한다.

자신이 기획한 제품의 납기일을 맞추기 위해 생산 공장에서 직원들과 함께 밤을 지새는 경우도 많다.

"소비자들과의 약속은 MD들의 생명과 같습니다. 상품 하나하나를 기획해 소비자들 앞에 내세우기까지는 정말 아이를 낳는 것과 같은 고통이 따릅니다"라고 말하는 김 팀장은 그러나 업무가 고된 만큼 보람도 크다고 강조했다.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제품을 외국에서 도입해 소비자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동질의 제품을 타 할인점보다 절반이상 싼 가격에 선보였을 때 가장 큰 성취감을 느낀다고 그는 말했다.


<>MD가 되려면=백화점 할인점 등 주로 유통업체에서 뛰고 있는 MD는 노동부가 선정한 21세기 유망직종 중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선 아직 MD가 될 수 있는 정식 코스로 공식 개설된 것은 없다.

관련 업체에 공개채용 등을 통해 입사한 뒤 3~4년의 현장 경험을 쌓고 사내의 경쟁을 통해 선발되는 것이 보통이다.

따라서 이 직업은 특별한 전공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롯데쇼핑 등 대형 백화점에서 통상 바이어라는 명칭을 붙이고 있으나 이들도 MD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게 업계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의류업체 쪽도 MD 선발방식은 유통업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업무 성격상 디자이너 출신들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적정한 상품을 가장 경제적인 가격으로 소비자가 가장 원하는 시기에 적정 수량을 제공한다"는 MD 수칙 1호를 지키려면 숫자에 대한 분석력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특히 계절적 수요 등 트렌드를 정확하게 읽고 맥을 짚어가는 동물적인 감각을 겸비해야 한다고 이들은 조언하고 있다.

직접 발품을 파는 직업이라 튼튼한 체력도 요구된다.

또 소비자들이 원하는 디자인을 예측할 수 있는 미적 감각도 필수다.

김 팀장은 "도전적이고 대인관계가 좋은 외향적 성격의 여성이라면 누구나 도전해 볼만하다"고 말했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