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진 < 서울대 사회학 교수 >

2년만에 서울대에 복직해 신입생 면접고사에 참여했다.

오랜만에 학생들을 만나보니 감회가 새롭고 느낀 점도 많았다.

내년부터 논술고사를 없애고 면접 비중을 높이기로 한 서울대 입시요강에 대해 염려의 소리도 있지만,대학 입시제도가 국민교육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문제를 전향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이나 전공분야 또는 모집단위에 따라 면접고사의 내용과 방법은 다양할 것이다.

다만 참고로 이번 사회학과의 경험을 소개하자면,학과가 미리 준비한 6개의 지문 가운데 수험생이 무작위로 하나를 뽑아 5분간 읽고 준비해 면접에 임하도록 했다.

지문은 모두 영어이고,유사한 분량에 난이도가 비슷했으나 친밀도는 수험생들의 독서와 경험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면접의 첫번째 과제는 지문내용에 대한 수험생의 이해정도를 확인하는 것이다.

내용을 정확히 파악한 학생이 있는가 하면,불안한 눈으로 더듬거리는 학생도 있고,잘못된 해석을 자신있게 말하는 학생도 간혹 있다.

물론 자신의 말로 내용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학생을 보면 가슴이 시원하다.

더듬거리는 학생을 만나더라도 약간의 도움으로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면 그래도 미소를 짓게 된다.

다음의 과제는 응용능력으로 지식의 깊이를 측정하는 것이다.

이윤추구의 부르주아 문화와 자유분방한 보헤미안 문화가 결합해 생긴 ''보보스''라는 새로운 인간유형을 다룬 지문을 뽑았다고 하자.그런 인간이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어디서 많이 발견되는가? 혹시 주변에 있는가? 이런 질문을 통해 면접교수들은 수험생의 독해력만이 아니라 현실파악 능력을 검증한다.

마지막 과제는 수험생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요구하는 것이다.

"자네는 보보스 같은 인간유형을 좋아하는가,싫어하는가?" 여기에는 어떤 정답도 없다.

좋아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대로,싫어하는 사람은 싫어하는 대로 이유와 근거를 명확하게 개진하면 된다.

6개의 지문 가운데 어떤 것을 뽑는가는 그 날의 운이라 하겠다.

한 보기로 선거경쟁과 시민참여를 핵으로 하는 절차적 민주주의를 다룬 지문을 뽑은 수험생에게는 아무래도 정치현상에 대한 질문이 계속됐다.

이에 반해 가족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려했던 러시아 혁명경험을 다룬 지문을 택한 수험생들과는 가족과 여성 또는 페미니즘의 역할에 관해 흥미로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면접고사의 장점은 수험생의 이해능력은 물론 응용과 비판,그리고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측정하는데 다른 어떤 방식보다 우월하다는 것이다.

학문이 대화임을 고려할 때 면접고사는 정책적으로 장려할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물론 면접고사가 내실을 거두려면 준비하고 개선해야할 점들이 많다.좋은 면접소재와 모델을 개발해야 하고,교수들이 적지 않은 시간을 면접에 투입해야 한다.

학생들의 창의적 발상을 북돋아주고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함양시키려면 일선 교사들의 교육방법 개선과 교사들의 재교육 프로그램도 필요할 것이다.

지식을 암기의 대상이 아니라 창의의 원천으로 보는 발상전환이 요구된다.

우리 교육의 한 맹점은 지식 자체가 지나치게 수단화된 데 있다.

지식의 주체화가 약하다.

대학이나 대학원에서조차 학생들의 발표는 대부분 지정된 텍스트의 요약과 정리이고 ''나는 어떻게 생각하는가,왜 그런가?''의 질문이 빈약하다.

때문에 토론다운 토론이 없다.

그러나 이젠 남의 지식을 흡수 모방하는 단계를 벗어나 창의와 개성을 키우는 교육체제의 정착이 필요한 때가 됐다.

면접고사는 이런 변화를 촉매하는 작지만 중요한 고리가 될수 있다.따라서 이것을 잘 다듬고 발전시켜 그 전후방 효과로 교육의 질을 높여야 할 시점이 됐다.

서울대 입시요강을 보고 면접고사를 준비하는 학원의 성행을 미리 걱정하는 소리도 있지만,다양한 정보와 경험을 살려 질문에 신속히 응답하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짧은 기간에 형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문제의 관건은 학생들의 주관형성이며 이것은 어릴 때부터 학생 중심의 창의교육이 이뤄질 때 가능한 일이다.

이것은 공교육의 근본적인 체질개선을 요구한다.

hansjin@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