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 스님이 경남 통영 안정사 토굴에서 수도 정진하던 때의 얘기다.

어느결에 소문이 파다해져 스님의 법문 듣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몰려들었으나 스님은 아무도 만나지 않고 참선에 정진했다.

어느날 그곳의 군수와 서장이 찾아와 스님의 육성 법어를 듣지 않고는 떠나지 않겠다고 버틴 끝에 겨우 스님을 만났다.

그들은 "나라가 잘 되려면 어찌해야 되겠느냐"고 물었다.

참선하던 스님이 돌아앉아 우레와 같은 목소리로 내뱉은 말은 "공무원들이 백성들로부터 도적질하지 말아야 해"하는 한 마디였다.

당시 스님을 모시던 시자의 증언이다.

또 군사정권시절 한 산사에서 열린 법회때 어느 대학생이 시국에 대해서 한 말씀을 청하자 스님은 정치를 개인적인 욕망으로 하기 때문에 시국이 혼란스럽고 고통받는 사람이 생긴다면서 "민주의 깃발을 하루 빨리 올려야 한다"고 했다.

6공이 시작된 87년 조계종 종정 신년법어에서 성철스님은 "맑은 하늘 둥근 달빛 속에 쌍쌍이 날아가는 기러기 소리 우리를 축복하니 평화와 자유의 메아리 우주에 넘쳐 흐릅니다"라고 일갈했다.

목사나 신부, 스님과 같은 종교인의 정치현실에 대한 발언은 이처럼 비판적이기도 하고 때로는 고무적이기도 하지만 그 본질은 모두가 덕담(德談)이다.

종교는 정치적 정당성의 원천이 되기도 하고 또 그것에 대한 비판적 부정적 평가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그런 탓에 정치집단은 종교집단을 두려워하는 것이 보통이다.

결국 가장 이상적인 것은 종교가 정치적 권력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유지하는 것이지만 미분화된 우리 사회에서는 그처럼 어려운 일도 없다.

한 불교지도자의 야당 총재에 대한 비판적 발언이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다.

개인의 의견이든 종단의 견해든 정치에 말려들고 있는 것을 보면 그다지 사려 깊은 발언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우리 속담에 ''악담(惡談)은 덕담''이란 말이 있다.

남을 욕하는 말은 도리어 욕을 듣는 이에게 좋은 수를 끼친다는 뜻으로 쓰는 말이다.

상대방이 오히려 그런 여유를 가졌으면 한다.

설날 아침 세배를 받으며 내려줄 덕담이나 생각해 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