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15∼20일 중국을 방문했다.

김 위원장은 방중일정중 무려 나흘을 중국 개혁.개방의 상징인 상하이 푸둥 지구를 시찰했다.

한 지역에 이렇게 오래 머문 것도 이례적이지만 방문하고 있는 장소도 의미심장하다.

반도체 생산라인, 자동차 생산라인, 과학기술단지, 생명공학단지 등 첨단 기술 및 과학의 현장뿐만 아니라 증권거래소 등 시장경제의 현장, 나아가 지하철 등 주민 생활의 현장까지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김 위원장의 움직임은 ''시장경제''의 성과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학습한다는 중요한 목적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중국의 개혁.개방 방식을 원용해 북한의 개혁.개방을 꾀하겠다는 의지를 김 위원장 자신의 몸으로 보여주겠다는 제스처''로 해석할 수 있다.

사실 현재 북한 경제 상황으로 보아 경제개혁은 외부로부터의 도움없이는 이루어지기 어렵다.

김 위원장의 시찰대상 기업에 미국의 GM 및 일본의 NEC 계열이 포함돼 있다는 사실은, 외자유치에 대한 관심 표명으로 볼 수 있다.

김 위원장의 수행원에는 수십년간 경제분야에 종사해온 연형묵 국방위원 등 경제관료가 상당수 포함됐다.

또 중국측도 경제 총수인 주룽지 총리가 직접 응대했다는 점은 이번 방문의 ''경제적 성격''을 말해주고 있다.

1979년 중국이 개혁.개방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시점에 덩샤오핑은 미국 전역을 방문한 바 있다.

미국은 덩샤오핑이 세계 최대의 자본주의 경제대국 미국을 직접 목격함으로써 시장경제를 정확하게 이해하도록 최대한의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덩샤오핑은 자본주의경제의 발전상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그 충격을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에 반영시킨 것이다.

이번 김 위원장의 상하이 시찰은 북한의 향후 변화와 관련, 덩샤오핑의 미국 방문에 견줄만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다만 방문지는 정치적으로 공산당 통치체제를 유지하는 가운데 경제적으로 시장경제를 성공시키고 있는 중국의 개혁.개방 현장인 점이 다르다.

과거 중국의 개혁.개방에 협력했던 미국의 대북 정책이 유동적인 가운데 중국이 후원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김 위원장의 행보는 양국이 단 한차례 내보낸 공식 보도를 통해서만 전해졌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자신의 중국 시찰 과정을 하나하나 영상에 담아 이를 북한 내부 및 외부 세계에 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의 개혁.개방과 북한의 변화를 주제로 한 김 위원장 감독.주연의 북.중 합작영화를 찍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김 위원장 스스로 첨단기술 및 시장경제를 체험하는 모습이 전 세계에 방영된다면, 바로 북한도 이와 같은 방향을 지향한다는 극적인 메시지가 될 것이다.

나아가 일부 편집은 되겠지만 그 영상이 북한 내부에 방영된다면 북한 주민에게는 향후 변화를 위한 충격적 효과를 주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도 남북정상회담 이후 김 위원장 쇼크는 여전히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당초 북한의 개혁은 클린턴 방북과 북.미 관계 정상화, 북.일 정상회담과 북.일 수교라는 스케줄을 전제로 계획됐을 것으로 생각된다.

중국의 지원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의 경제제재 조치 해제, 북한의 국제경제기구 가입 및 대북 자금지원, 북.일 수교에 따른 막대한 보상금 지불 등을 개혁에 필요한 주요 재원으로 상정했을 것이다.

그러나 클린턴 방북이 무산되며 공화당 정부의 대북 정책은 불투명한 상태에서 당초 시나리오는 차질을 빚고 있다.

북한은 잠정적으로 미국 일본 대신 중국을 파트너로 개혁을 추진한다는 선택을 한 것이다.

이는 미국 일본의 대북 정책 한계를 말해 주는 것이다.

물론 북.중협력 못지 않게 남북 경제협력도 북한의 개혁과 밀접한 관련을 맺지 않을 수 없다.

개성공단 사업이야말로 북한의 개혁.개방에 대한 시범 프로젝트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은 북한의 개혁.개방 과정에서 남한이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 첫 단추는 대북 전력지원 여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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