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을 걸머지는 살림살이를 했다면 결코 잘한 일은 아니다.

이는 개인이건 기업이건 마찬가지이고,국가재정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한번 빚을 지게 되면 그 빚을 갚기 위해 또 빚을 내야하는 상황이 벌어지기 십상이다.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 종국에는 파산을 불러 올 수도 있다.

우리경제는 그동안 다른 나라에 비해 재정적자가 상대적으로 적은 축에 속하는 비교적 건전한 재정을 운영해 왔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극심한 경기침체로 기업도산과 그로 인한 실업급증 등에 대처하기 위해 국채발행이 늘어나면서 적자재정으로 돌아서 경제운용의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오죽했으면 사사건건 부딪치기만 하는 여·야가 재정적자 감축과 균형재정 달성을 위한 ''재정건전화 특별법'' 제정에는 한 목소리를 내고 있겠는가.

그런데 미국의 경제학자 가운데 재정적자가 경제에 해악을 끼친다는 주장이 난센스라고 단언하는 사람이 있다.

미국 경제학회 회장을 지낸 로버트 아이스너 노스웨스턴대 교수는 재정적자 축소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오히려 적자는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것이라는 적극적인 해석을 곁들인다.물론 여러가지 전제와 미국경제를 사례로 삼아 분석한 결과라는 점에서 자세한 설명없이 결론만 적시함으로써 자칫 잘못 이해될 소지도 없지는 않지만 대충 이런 내용이다.

우선 주권국가의 정부가 자국통화로 진 부채를 갚지 못하겠다고 나자빠지는 일은 있을수 없다.

필요하면 언제라도 법률에 근거해 국민들에게 세금을 부과할 수 있고,아니면 돈을 찍어내면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인플레 심화 등의 우려가 있지만 부채를 상환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또 재정적자가 누적되면 후손들에게 더 많은 부채를 넘겨주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염려할 바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물론 많은 부채를 다음세대에 이월시키는 객관적 현상은 부인할수 없다.

그런데 국가가 돈을 빌리기 위해 발행한 국고증권이나 채권 등을 누가 소유하고 있는지를 따져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즉 후손들이 부채만 넘겨 받는 것이 아니라 국가로부터 빚 받을 채권까지 넘겨 받는다.

그렇게 보면 오히려 저축의 효과를 낼수도 있어 그것이 반드시 나쁘다고만 할수 없다는 것이다.

국가부채가 많으면 그 이자부담만도 엄청나게 많기 때문에 경제운영에 큰 짐이 된다는 통상적 주장에 대해서도 견해가 다소 다르다.

재정의 이자부담은 곧 국민들의 소득이고,정부가 이자부담을 하기 위해 세금을 더 걷는다 하더라도 그 소득으로 감당할 수 있다.

설령 정부에 돈을 빌려주고 이자소득을 올리는 주체가 연기금이나 금융기관이라 하더라도 결국 기금 가입자나 예금 가입자들에게 환원되는 것이라고 본다면 국민들의 소득으로 귀착된다.

만성적인 재정적자가 지속되면 인플레를 야기시킬 우려가 크다는 것도 경제학자들이 지적하는 병폐 가운데 하나이지만 높은 수준의 고용을 유지하는데 적자가 쓰인다면 이것 또한 부질없는 걱정이라고 지적한다.

다만 적자를 가장 생산적으로 쓰는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외환위기 이후 재정적자가 늘고,특히 공적자금의 추가투입과 경기부양 실시 등으로 재정적자 또는 국가채무의 급증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정부는 늦어도 오는 2003년 균형재정을 달성하고 국채를 순상환하는 내용의 중기 재정계획을 짜놓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정부는 당초 11조원의 국채발행을 계획했었으나 세수증가로 3조원에 그친 사실에 비춰보면 힘겨운 과제도 아닐것 같다.

불황기에는 적자재정을 통해 민간구매력과 총수요를 자극해 경기를 부양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는게 전통적인 케인스 경제학 이론이다.

대다수 경제전문가들이 예측하고 있듯이 올 1·4분기가 경기침체의 바닥이라고 한다면 재정의 역할도 평소와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다만 얼마나 효과적이고 생산적으로 집행하느냐가 관건이다.

국가채무 누적과 적자재정의 확대는 결코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아이스너 교수의 접근방법도 한번쯤은 되새겨볼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