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춥다지만 워싱턴도 춥기는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요즘 워싱턴을 찾는 한국인들의 발길은 뜨겁다.

오는 20일 거행되는 미국 대통령 취임식을 의식한 잰걸음이다.

취임식에 외국손님을 부르지 않는 미국 분위기를 감안해보면 이들 한국으로부터의 축하행렬은 분명 ''이상한 행렬''이다.

초청된 유일한 외국손님이라고 해봐야 워싱턴에 주재하는 외국대사들이 고작인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어느 사회건 돈없는 정치란 있을 수 없다.

미국은 특히 그렇다.

작년 11월 선거에서 조지 부시 차기대통령이 쓴 선거비용은 어림잡아 1억달러에 이른다.

어찌 보면 이 돈을 댄 사람들이야말로 부시를 승자로 만든 일등공신들인지 모른다.

하지만 부시가 이들에게 대가(代價)를 지불할 수 있는 방법은 별로 없다.

한국처럼 뒤에서 슬며시 이권(利權)을 챙겨주려 들었다가는 스스로의 목과 정치생명을 내놓아야 한다.

마땅한 빚잔치 방법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대안은 있다.

취임식이 그 돌파구인 것이다.

미국정당들은 취임식에의 ''화려한 초대''를 통해 대부분의 빚을 털어버리는 것이다.

물론 취임 선서대(臺)등 ''특A석''은 상하 양원의원,대법원판사,그리고 양당주역들을 위한 자리다.

하지만 그 다음 ''A석''들은 수십,수백만달러를 흔쾌히 쾌척한 기업이나 개인들 몫이다.

취임식준비위원회나 공화당주역들이 후원자의 공헌도(?)에 따라 적절히 배분하는 티켓은 ''빚잔치용''인 것이다.

미국에서 ''정식으로 초청받아왔다''고 주장하는 한국인사들의 초청장도 사실상 따지고 보면 대부분 이같은 경로에서 빠져나간 일부를 하도급받아 온 것이다.

미국정당들의 빚잔치 무대는 취임식에 국한되지 않는다.

취임식이 열리는 20일 저녁 워싱턴은 거대한 무도회장으로 변한다.

최고급 호텔, 컨벤션센터 등 8개 대형장소가 거대한 만찬과 무도회장으로 바뀐다.

나비 넥타이와 검은 파티복으로 치장한 정치인들과 이들을 지원한 후원자들이 승리의 축배를 드는 행사가 열리는 것이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이들 8개 무도회장을 직접 돌며 현금상환 대신 미소와 껴안기, 그리고 축배제의로 정치헌금에 대한 빚털이를 하는 것이다.

이번에 워싱턴을 찾은 한국인은 의원들만 줄잡아 20여명에 이른다.

보좌관까지 합하면 족히 10명은 추가된다.

개중에는 차기를 내다보고 뛴다는 이른바 잠룡(潛龍) 복룡(伏龍)들도 끼어있다.

친구따라 강남 가려는지 언론사 국제부장들까지 12명이나 들이닥친다.

여기에다 알음알음 찾아온 경제인들까지 합하면 겉으로 드러난 숫자만 50명이 넘는다.

한마디로 요즘 워싱턴은 장터다.

물론 생선냄새로 가득한 시골장터는 아니다.

마음이 바쁜 장터인 것이다.

미국인중 그 어느 누구도 한가한 사람은 없다.

의회는 청문회로 바쁘고 공화당의 모든 실세는 정권인수로 바쁘다.

취임식에 오는 한국인사들은 한국에서는 ''가능성있는 잠룡''일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처럼 눈코뜰새 없이 바쁜 미국인들에겐 그저 귀찮은 존재일 뿐이다.

특별한 의제를 들고온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유머와 멋을 부려가며 파티에 빠져드는 것도 아니다.

그저 꿔다놓은 보릿자루같은 이방인 그대로의 모습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러면서도 이들이 만나려는 사람은 모조리 기관장들뿐이다.

세계은행총재, IMF총재, 앨런 그린스펀 미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장,미하원의장…. 모조리 장(長)들만 만나게 해달라고 야단이다.

만나서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저 사진찍고 국내과시가 주목적이다.

이같은 워싱턴행렬이 빚는 결과는 국민의 세금과 기업준조세부담뿐이다.

양봉진 워싱턴 특파원 yangbongjin@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