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부시행정부 출범으로 한동안 뜸했던 미국의 통상공세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그동안 수면아래에 잠복해있던 쌍무현안 ''자동차시장 개방''에서부터 다자현안인 ''WTO 뉴라운드 협상''까지 미국은 본격적으로 나설 셈이다.

미국 자동차업계 로비스트였던 앤드루 카드가 부시의 비서실장으로 임명된 사실부터가 미국업계를 고무시키고 있다.

지난 한해 50만대가 넘는 한국 자동차를 수입하면서 고작 1천5백대의 자동차만을 한국에 수출한 미국업체들은 단단히 벼르고 있다.클린턴행정부가 성사시키지 못했던 WTO 뉴라운드 출범도 부시행정부에선 가능할 것으로 관측된다. 그동안 민주당 클린턴행정부의 발목을 잡았던 노동단체와 환경단체의 압력으로부터 공화당 부시행정부는 상대적으로 운신의 폭이 자유로울 것이기 때문이다.

부시행정부의 등장으로 대북 햇볕정책에 얼마나 제동이 걸리겠는가에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한국 정부를 곤혹스럽게 할 것은 오히려 공화당 행정부의 통상공세다.

미국이 자동차시장의 개방을 들고 나오면 한국의 여론은 들끓을 것이다.

대우자동차 문제도 해결되지 않고 국내시장이 위축되어 있는 판에 개방은 무슨 소리냐며 거센 반발이 터져 나올 것이다.

WTO 뉴라운드 협상이 가시화되면 쌀문제가 또 터져 나오게 돼있다.

법률 서비스 등 각종 전문직 서비스시장 개방,통신시장 개방,영화시장 개방 등 어느 것 하나 정치적으로 민감하지 않은 사안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문제를 비켜갈 수도 없다.

이해집단간의 분출하는 갈등을 적절하게 조정할 수 있는 권한과 능력을 현 통상정책 당국이 갖고 있는지가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르게 될것이다.그러나 지금까지 정부가 보여준 문제해결 능력을 보면 앞으로의 여정이 얼마나 험난할지 짐작케 한다.

한해를 넘긴 한국과 칠레간의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위한 협상의 난맥상이 이러한 우려의 단서를 제공한다.

양국간 상이한 무역구조때문에 협정체결에 특별한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였던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협상은 예상치 못한 ''포도''라는 복병을 만났다.

한국의 농림수산부가 칠레산 포도의 수입자유화를 거부하고 나서는 바람에 협상이 진통을 겪고 있다.

남반구에서 생산되는 칠레산 포도는 한국의 포도 비수확기에 수입되는데 왜 문제가 될까.

농림수산부는 겨울철에 칠레산 포도의 수입이 급증하면 다른 과일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어 농가에 피해를 준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소비대체에 따른 농가피해의 실제 효과는 미약할 것으로 관측된다.

간단한 ''포도'' 하나 가지고도 이럴진대 앞으로 닥쳐올 메가톤급 태풍인 자동차 쌀 서비스 시장 개방은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걱정이다.

외환위기 탈출을 위해 IMF가 요구하는 수많은 개방조치를 취했지만 외국 통상관리의 눈에 비친 한국 시장은 여전히 폐쇄적이다.

그들은 보다 많은 외국 자동차들이 한국의 거리를 질주하고,보다 다양한 외국 농수산물들이 한국인의 식탁에 오르고, 보다 많은 외국영화가 한국 영화관에서 상영되며,외국기업이 한국의 통신업체를 인수하는데 장애가 없기를 바란다.

이것은 보다 많은 한국차가 외국 거리를 질주하고,보다 많은 한국 가전제품이 외국 가정에서 사용되며,한국 기업이 유수한 외국 기업을 인수합병할 수 있기를 바라는 한국인의 기대와 마찬가지로 건강한 바람이다.

한국 경제 성장은 세계경제의 지속적인 성장과 맞물려 있다.

세계경제 성장을 위해서 각국의 시장이 더욱 개방되고 경쟁이 확산되어야 하며,교역질서가 더욱 안정적이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동의한다.

무역의존도가 높은 한국이 적극적,지속적으로 개방조치를 취하여 경제의 구석구석까지 효율성을 증대시키고 선진국의 보호주의 공세를 차단해야 한다는 데 이의가 없다.

국제무대에서 한국을 ''개방된 통상국가''라고 홍보해 온 대통령의 바람과는 달리 한국은 더 개방돼야 하는 통상국가다.

개방형 통상국가를 실현하는 것은 말이 아니라 행동이다.

개방정책에 대해 정부가 원칙을 세우고 이해집단간의 갈등을 효과적으로 조정하지 못한다면 그 행동은 여전히 ''바람''으로만 존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