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중역 출신의 B씨(55).

그는 커피 전문점이 한창 인기를 끌던 지난 95년 잠실에 60평 규모의 커피전문점을 열었다.

일반적으로 지하철역 주변 대로는 유동인구가 많지만 신천역처럼 지하철역과 먹자골목이 이어진 곳은 사람들이 역을 빠져 나와 곧바로 골목 안으로 들어가 버리기 때문에 대로변보다 골목 안쪽이 유동인구가 많다.

B씨의 점포앞은 그다지 유동인구가 많지 않은 곳이었는데도 불구하고 1천~1천5백원 정도의 싼 가격으로 커피를 마실 수 있어 약속 장소 구실을 하면서 손님들이 붐볐다.

더구나 옆 건물에는 여행사가 있었는데 단체 여행객을 실은 대형버스들이 주차해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항시 손님들이 끊이질 않았다.

B씨의 장사가 잘 된 것은 단순히 목이 좋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대기업에 근무하면서 표준화된 매뉴얼 교육에 익숙했던 그는 커피전문점의 서비스와 친절 매뉴얼을 직접 작성,정기적으로 아르바이트생들을 교육시켰다.

또 직원들과 똑같이 일찍 나와서 매장을 청소하고 친절하게 손님을 맞는 모습을 보여줘 직원들의 모범이 됐다.

2년 가까이 노력한 결과 매출도 어느정도 올랐고 사업초기의 긴장감도 사라져 자신감을 얻었다.

그러자 분당집에서 잠실까지 오고가는 시간이 차츰 힘들게 느껴졌고 편하게 사업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 자신의 집 주변에서 점포를 다시 알아봤다.

여기저기 수소문한 결과 완공단계에 이른 상가건물을 찾아냈다.

신축 건물이어서 탐이 난 B씨는 잠실 가게를 내놓고 새 건물 2층을 3억원 가량에 분양받았다.

실내 설비만 마무리되면 깨끗한 신축건물에서 고급 커피 전문점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가 생겼다.

건물을 지은 건축회사가 나빠진 경기 때문에 부도를 맞은 것이다.

결국 B씨의 꿈은 수포로 돌아갔다.

B씨의 실패 원인은 표면적으로는 잘못된 건물을 고른데 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나태함에 있다.

장사가 최고조에 올랐을 때가 사업주들에게는 그만큼 위기의 시간이 될 수 있다.

사업은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다.

자신의 집 가까이에 점포를 얻는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좀 더 여유롭게 누리고 싶은 마음이 앞서 수익 창출에 대한 의지가 약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B씨도 사업의 안정이 주는 유혹에 빠져 무엇이 최우선인가를 판단하는 안목이 흐려졌던 것이다.

그러나 사업을 분석해 보면 설사 B씨가 분당에서 고급 커피 전문점으로 재창업을 했다 하더라도 그의 성공을 장담하기는 어렵다.

IMF 위기 이후 소비심리가 실속과 실용 위주로 바뀌면서 커피 전문점도 고급보다는 저렴한 가격의 테이크아웃이 가능해야 인기를 끌 수 있기 때문이다.

소비문화가 합리적으로 바뀌면 일부 부유계층을 상대로 하지 않고서는 고급 컨셉으로 공략할 수 있는 고객층은 불명확해진다.

한국창업전략연구소 이경희 소장 (02)786-8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