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모로코에 진출한 것을 다른 업체가 알면 얼마 안가 모로코시장에서 한국 업체끼리 피터지는 싸움이 벌어질 것입니다"

반도체 후공정장비를 생산하는 A사의 이모 사장.1백여명의 직원과 밤낮없이 일해 지난해 수출 1천만달러를 넘긴 알찬 기업을 일궈냈다.

세계 구석구석 ''안 가본 곳''이 없을 거라는 이 사장은 미국 유럽 일본 시장은 물론이고 반도체와는 거리가 있을 것 같은 북아프리카시장까지 발로 뛰며 제품을 팔았다.

개방적이고 활달한 성격의 이 사장이지만 세계 각지에서 시장을 개척한 자신의 행보가 드러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새 시장을 뚫었다는 소식이 퍼지자마자 여러 업체가 ''구름떼''처럼 달려들어 제살 깎아먹기식 경쟁을 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인천에서 헤드폰을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방식으로 수출하는 D사의 김모 사장.중소기업으로선 적잖은 수억원의 연구개발비를 들여 외형과 성능을 대폭 개선한 신제품을 선보였다.

신제품으로 ''수출대박''을 이룰 것이란 희망을 품으면서도 일말의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 없다.

"곧 국내 경쟁업체들로부터 싸구려 복제품이 쏟아져나와 수년간 개발노력이 물거품이 돼버릴 수도 있다"고 그는 소리죽여 말한다.

이런 상황은 시계업계도 마찬가지.작년 1천4백만달러어치의 수출 실적을 거둔 SWC 최윤집 사장은 "가장 두려운 것은 환율급등락도,무역장벽도 아닌 경쟁업체의 ''카피''제품"이라고 지적한다.

한개의 제품을 만들기 위해선 수십개의 디자인이 필요하고 금형 제작 등 비용도 만만치 않다.게다가 이런 과정을 거쳐 탄생한 제품이 모두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히트상품''은 백에 하나둘 나올 정도라는 것.

그렇지만 일단 성공했다는 소문이 퍼지면 비슷한 디자인의 제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외국바이어를 대상으로 가격인하경쟁이 곳곳에서 벌어진다.

결국 한국시계의 가격과 위상만 깎아내리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경제의 돌파구를 수출에서 찾아야 한다는 현 시점에서 모두가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아닌가 싶다.

김동욱 벤처중기부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