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가 다시 침체되면서 ''IMF초심론''의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IMF위기 극복을 선언한 정부 입장에서 IMF초심론은 지금까지의 개혁이 실패한 ''미완의 개혁''이었음을 자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곤혹스러운 자기부정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정부는 구조조정 지연에 따른 부실누적,증시침체,신용경색,집단이기주의 표출 등을 애써 외면하며 ''위기의식이 오히려 위기를 부를 수 있다''는 자기 방어논리를 폈다.

정부는 초심으로 돌아가 올해 2월까지 구조조정을 마무리짓겠다고 했다.

우리 경제가 처한 절박한 현실과 ''개혁피로''라는 현실정서를 감안한다 치더라도 불과 몇개월 안에 구조조정을 마무리짓겠다는 것은 구조조정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공적자금이 투입된 부실은행을 금융지주회사로 묶고 또 부실기업 몇개를 퇴출시키는 것이 구조조정의 전부는 아니다.

이같은 정책발상이 IMF 조기 졸업을 선언하게 한 배경이었음을 냉정하게 인식해야 한다.

결국 정부는 IMF초심을 강조했지만 정책행태는 전혀 달라진 것이 없지 않나 싶다.

구조조정이 이뤄지려면 기업조직을 유연화시킬 만큼 시장압력이 작용해야 한다.

또 실물부문과 금융부문간의 견제와 균형이 작동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

이러한 구조조정의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시장의 힘이 아닌 정부의 힘으로 구조조정을 주도했기 때문에 이벤트성 구조조정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몰아치기식의 구조조정으로 충격의 수위를 조절하다보니 구조조정이 늘 미진해 시장의 신뢰를 얻는 데도 실패했다.

구조조정은 효율성을 상실한 기업을 정리,자금과 인력을 효율성이 높은 기업으로 흐르게 함으로써 산업을 재조직해 경쟁력과 성장잠재력을 높이는 과정이다.

그리고 시스템적인 시장의 힘에 의해''상시적''으로 기업의 옥석이 가려져 그 충격이 분산될 때 비로소 구조조정이 이뤄질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구조조정에 시한을 정하는 등의 조급함은 금물이다.

미국도 1980년대의 구조조정이 신경제로 꽃피우기까지 10년여를 필요로 했다.

불법파업에 단호히 대처하면서 단기적 실업증가에도 불구하고 구조조정을 일관되게 추진해 온 레이건 행정부가 신경제의 ''진정한 공로자''였다는 평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성공적인 구조조정을 위해선 개혁의 철학적 토대를 공고히 해야 한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병행발전의 ''DJ노믹스''에서 갈등 조정과 소외계층 배려라는 명분하에 시장경제는 사라지고 ''대중주의(populism)''형태의 기형적 민주주의만 남지 않았나 싶다.

정치적 고려가 우선하는 대중주의는 책임지지 않는 자유를 용인함으로써 도덕적 해이가 만연됐다.

예컨대 명확한 논리적 근거없이 예금보험대상 금융기관도 아닌 투신에 공적자금을 투입한 것은 투자자가 투자결과를 책임져야 하는 자기책임 원리를 훼손시킨 것이다.

또 농민들의 시위에 즉각 부채탕감이라는 당근으로 대처한 정부의 행태도 ''책임없는 자유''를 묵인한 것으로 대중주의의 전형이다.

농민은 정액소득이 아닌 잔여소득자다.

때문에 농민은 위험 부담을 지는 ''기업가''인 셈이다.

따라서 정부는 정보제공,유통경로 개선,그리고 농산물값 안정을 통해 농가소득의 불확실성을 줄여주는 쪽으로 정책의 가닥을 잡아야 한다.

개혁이 지지부진한 것은 시장경제원리에 바탕을 둔,긴 호흡의 개혁을 추진하지 않고 압축개혁의 미련과 정책관행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혁의 피로가 증폭된 것도 개혁의 충격이 커서라기보다는 각종 부실에 대한 책임소재 규명과 책임추궁이 미진해 경제적 약자가 능력이상으로 고통분담을 강요받고 있다는 불만이 팽배했기 때문이다.

IMF초심을 결의한 이상 앞으로의 선택은 ''개혁의 정도(正道)''다.

부실책임의 소재와 부담능력을 고려해 고통분담을 조정하고 시장의 힘에 의해 구조조정이 자리잡을 때까지 인내의 미학(美學)을 가져야 한다.

dkcho@wh.myongj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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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약력=

△서울대 건축공학과
△미 신시내티대 경제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