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애 < 건축가 / (주) 서울포럼 대표 >

새천년 유행코드 중 하나는 ''CEO''다.

리더십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다채로운 CEO 모델이 등장한 것이다.

경제 지도자뿐만 아니라 정치 지도자,종교 지도자까지도 CEO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잭 웰치나 빌 게이츠 정도는 당연한 모델이고, 일본의 도쿠가와 이에야스,오다 노부나가도 새로운 리더십으로 조명 받는다.

또 엘리자베스 1세의 생존과 번영 기술이 주목받는가 하면,석가모니 예수 공자조차도 ''CEO 모델''이라는 관점으로 주목되고 있다.

난세에 등장하여 번영을 이루고 오랜 지속성을 유지하는 인물들의 경영 비결을 배우자는 것이다.

새천년 유행코드 중 다른 하나는 ''돈벌기''다.

돈벌기 좋아하지 않는 시대나 세대는 없지만,누구나 염치없이 당당하게 ''돈벌기 얘기''하는 분위기를 만든 것은 이 시대의 대표적 성취(?)라고나 할까.

잘사는 나라나 못사는 나라나,잘사는 사람이나 못사는 사람이나,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돈 벌기''를 입에 달고 다니니 과연 시대와 세대를 완벽하게 사로잡은 코드가 아닐 수 없다.

모든 사람을 돈벌기 귀재로 만들려는 온갖 비법이 성행한다.

돈벌기 위한 각종 경영지침서도 끈질기게 유행한다.

''돈''으로 증명이 되지 않는 한,사람의 재능이란 별 소용이 없는 것으로 치부된다.

한마디로 ''CEO와 돈벌기 신드롬''은 새천년 처세술의 중심 축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뒤집어 보면 참으로 공허하다.

과연 이 시대 사람 중 몇%나 CEO가 될까.

아마도 소수점 몇자리 이하의 숫자일 것이다.

말이야 누구나 CEO가 될 수 있다는 마음가짐과 행동거지를 가지라는 것이지만,실제 그렇게 될까.

공연히 ''CEO 콤플렉스''에 걸려 자기 설 자리에 맞는 자신의 기량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기 십상이다.

과연 이 시대 사람 중 누가 돈을 벌까.

돈벌기가 시대적 코드가 됨에도 불구하고 돈 버는 사람들은 아주 극소수다.

죽을 때까지 자기 밥벌이만 해내더라도 잘 살아낸 삶인 것이 대체적인 사람들이다.

''CEO와 돈벌기''는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왜곡되고 있나.

''1등,최고권력 집착,단순목표,수단적 사고''같은 것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의 모델은 ''권력형 자본주의''에 치우친다.

물론 권력과 자본이란 항상 떼려야 뗄 수 없는 짝이다.

다만 우리 사회의 비극은 ''권력+돈''을 부추긴다는 데 있다.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문화 어디에서나 마찬가지다.

이런 왜곡된 가치관으로 우리 사회의 긴 앞날이 과연 어디로 향할 수 있을까.

흥미로운 것은 유능한 CEO를 움직이는 힘은 돈 자체보다 다른 욕구라는 사실이다.

그 무엇인가를 이루려는 성취욕,자신의 생각과 아이디어가 세상에서 제대로 쓰이기를 바라는 욕구,자신의 방식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고 인정받으려는 욕망, 자신의 비전이 세상을 바꾸는 것을 보고 싶은 야망 같은 것이다.

돈은 따라오는 것이고 쓰이는 것일 뿐이다.

돈벌기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 치고 그렇게 돈벌기에 성공한 사람은 별로 없다.

게다가 돈 잘 번다는 사람들은 천국에 있는 듯 했는데 부지불식간에 지옥으로 떨어지곤 하니 도대체 돈벌기란 못믿을 세상인 것이다.

흥미롭다기 보다 비장한 사실은,우리의 인물들은 영 그럴듯한 CEO 모델로 떠오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의 김우중, ''건설한국의 대표주자'' 정주영 처럼,지는 별은 있어도 뜨는 별은 찾기 힘들다.

돈벌기 바쁜 CEO들만 있어서인가.

아니면 권력형 자본가이기 때문인가.

2001년 꼭두새벽부터 정치는 아수라장이고,경제는 허우적대며,사회는 쪼개진다.

돈벌기는 커녕 사람들이 거리로 내몰리는 난국에 처하고 보니,각 분야에서 새로운 CEO들의 등장이 간절히 기다려 진다.

부디 끈질긴 성취욕과 자신의 생각,자신의 방식,자신의 비전을 실천하는데 투철한 CEO가 떠오르기를 기대한다.

그들은 돈을 제대로 쓰고 제대로 따라가게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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