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이 현대전자와 건설,쌍용양회 등 대기업 회사채를 일괄 인수키로한 엊그제 결정은, 물론 원칙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본다.

정부가 채권 상환여부에 개입하는 것부터가 잘못이고 더욱이 국책은행이 직접 채권시장에 투입되는 것도 원칙에는 맞지 않는다 하겠다.

그러나 회사채 시장이 마비상태를 보여온지 오래고 이대로 방치하다간 국내 대기업들이 연쇄적인 부도파문에 휩싸인 끝에 총체적인 경제위기까지 불러 올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번 조치는 정당성 여부를 떠나 불가피한 측면이 더욱 컸다고 봐야 할 것이다.

당장 현대전자를 비롯 현대건설과 쌍용양회 등이 수혜를 입을 것이라지만 연중 전체로는 모두 25조원어치의 회사채를 산업은행이 사들일 것이라니 신용등급이 낮은 대기업들은 이로써 극도의 자금난에서는 벗어났다고 봐도 좋을 듯하다.

정부가 채권시장의 기본 원칙을 어기면서까지 이같은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게 된 것은 역시 회사채 시장이 구조적인 붕괴위기에 처해 현 상태로는 65조원으로 추산되는 올해 만기도래 채권을 소화해낼 방법이 전무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금감원 집계만 하더라도 지난 2년동안 각종 채권펀드에서 빠져나간 자금이 무려 1백40조원에 달하고 있고 더욱이 금융기관들의 채권투자 기피현상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어 국책은행을 동원하는 외엔 별다른 대안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특단의 대책을 언제까지 동원할 수 없다는 점 또한 명백한 사실이다.

특단의 대책을 ''비상한 시기의 예외적 조치''로 정의한다면 이런 방법이 다시 반복되어서는 안된다는 점도 강조할 필요는 없다.

정부로서는 채권시장이 스스로 되살아날 수 있도록 장단기 회생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주기 바란다.

이를 위해서는 벌써 2년째 자금난에 빠져있는 투자신탁을 정상화시키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지금으로서는 금융기관들이 자율적으로 채권투자에 나설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주는 방안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BIS비율 산정 기준을 완화해 회사채의 위험 가중치를 조정하는 것도 바로 그런 대책에 포함될 수 있다고 본다.

BIS비율을 조정하는 것은 금융구조조정 지연 등 또다른 논란을 초래할 가능성도 없지 않지만 정부가 채권시장에 직접 개입하는 것보다는 그래도 시장원리에 가깝다는 것을 굳이 부인할 필요는 없다. 금융기관을 꽁꽁 묶어 놓은 상태에서 특단의 대책을 남발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 방법이 부작용도 적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