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은 정치로 보나 금융으로 보나 실망스러운 한해였다.

총선 이후 정치쪽의 사정은 파행 또는 파국이라는 단어들로 요약된다.

연말이 가까워 오면서 다소 풀어지는 기미가 보였지만 의원(議員) 임대(賃貸)라는 희한한(?) 수법이 정국을 다시 얼어붙게 했다.

금융쪽도 반토막 또는 5분의 1토막이라는 말들이 그 실상을 대변해 주고 있다.

작년 하반기중 금융부문의 골칫거리 이슈는 공적자금 추가소요,정현준·진승현게이트의 금융사고,은행합병계획과 노조의 반발,조만간 만기가 돌아올 60조원 규모의 회사채 등 이었다.

해가 바뀌니 적어도 외견상으로는 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처럼 보인다.

공적자금은 추가로 40조원을 조성하기로 하는 한편 집행실적에 관한 국회청문회를 개최하기로 했고 금융사고들도 수사가 일단락됐다.

주택·국민은행의 노조파업은 철회됐으며 공적자금을 받는 부실은행의 노조들도 구조조정계획에 동의했다.

회사채 금년 만기분도 상당액을 산업은행이 떠맡기로 결론이 났다.

그렇지만 이정도로 우리 금융의 취약성이 해소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급한 불을 끄느라고 주로 편법이나 대증요법이 동원됐고 정공법에 의한 금융시스템의 개혁이 이뤄진 것은 아니므로 문제가 재발할 가능성이 결코 작지 않다.

돌이켜보면 과거 고도성장과정을 거치면서 가장 주름살이 많이 간 데가 금융이다. 이 부문이 경쟁력을 갖추고 발전해 나가도록 하려면 시장경제의 원칙이라는 정도(正道)에 맞춰 낙후된 제도와 관행을 근본적으로 고쳐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가장 중요한 과제는 관치금융의 퇴치다.

현정부는 이제 관치금융은 없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쉽사리 없어질 관행이 아닐 뿐 아니라 새로운 행태의 간섭과 통제도 나타나고 있어 ''신(新)관치금융''이라는 용어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관치금융이 사라지는 대신 정착돼야 할 것이 금융기관의 책임경영체제다.

이를 위해서는 금융기관의 소유구조와 지배구조가 개선되고 확립돼야 한다.

경영의 투명성과 책임성은 대폭 강화돼야 하겠지만 소유에 대한 엄격한 제한은 완화돼야 하겠다.

정부가 대기업 핑계를 대며 계속해서 은행의 소유에 관해 지나친 제한 규정을 두는 것은 관치금융을 계속하겠다는 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그런 다음에는 금융기관간의 경쟁을 촉진시키는 일이 필요하다.

금융상품의 종류와 가격, 진입과 퇴출 등에 관한 인위적인 제약이 모두 없어지고 그야말로 시장의 힘이 제대로 발휘 통용될 수 있는 장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의 과점 담합체제는 결국 무너지고 말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정부가 나서지 않아도 생존을 위한 인수 합병이 진행돼 대형 선도은행이 생겨날 것이고 중형 은행들은 전문성을 추구하게 될 것이다.

금융부문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 또하나 긴요한 일은 금융사고의 수사관행을 고치고 감독체계를 정비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주가조작의 혐의가 있어도 시장분위기를 고려한다며 조사나 수사가 미뤄지는 경우가 많았고 수사가 시작된 경우에도 서둘러 마무리하는 식으로 처리되곤 했다.

이런 방식은 범법행위를 조장할 위험이 있고 결국은 시장에 더 큰 충격을 주게 되므로 지양돼야 하겠다.

금융감독원의 기능도 재정립돼야 한다.

현수준의 인력으로 수많은 금융기관 본·지점을 검사하고 범법행위를 적발한다는 것은 무리라고 본다.그것은 금융감독원이 정부조직이 되든,민간조직으로 남든 마찬가지라고 하겠다.

감독원 검사는 금융기관 본점정도에 한정돼야 하고 그것도 적발위주의 검사보다는 경영지도의 검사로 바꿔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금융사고의 예방이나 적발의 많은 부분은 금융기관 스스로가 내부감사 기능을 강화해서 담당해 나가야 한다.

정치에 있어서는 잔재주나 꼼수가 통하기도 한다.

일단 집권하게 되면 그동안 동원됐던 온갖 수단들이 합리화될 수 있는 바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특히 금융에 있어서는 이런 수법이 통하지 않는다.

정도(正道)에 따라 개혁이 이뤄져야 금융과 경제를 정상적으로 회복시킬 수 있는 것이다.

< 본사 주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