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3천만 동포여,힘껏 뜁시다. 마음대로 웃읍시다. 힘을 다하여 추수합시다"

상해 임시정부 외교부장을 지낸 조소앙 선생이 1946년 3.1절 기념식에서 한 연설의 일부다.

당시 우리 민족은 이처럼 3천만명이라는 게 통설이었다.

1944년 인구조사 결과 국내 거주민만 2천5백12만명이었던 데다 광복 후 일본 만주 소련등에 흩어져 있던 4백만명중 상당수가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던 것이 70년엔 남한 인구만 3천만명,85년엔 4천만명을 돌파했다.

81년 경제기획원의 "한국의 인구추계"를 보면 90년 4천4백만명,2000년엔 5천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됐다.

그러나 60~70년대 집중적인 가족계획 캠페인 덕일까, 80년대 이후 인구증가율이 뚝 떨어지더니 95년에야 4천4백60만명이 됐다.

5년마다 실시하는 통계청의 인구센서스 결과 2000년 11월1일 현재 총인구는 4천6백12만명으로 나타났다.

95년 기준 인구시계 상으론 새해 1월 1일 0시 4천7백47만명이 돼야 하지만 출산율 저하로 예정치를 훨씬 밑돌게 됐다.

실제 99년 국내 가임여성 1인당 출산율은 1.42명으로 미국(2.06)과 프랑스(1.75)보다도 낮다.

그 결과 70년 1백만명이상이던 연간 신생아 수가 99년엔 61만6천명밖에 안됐다.

이대로라면 20년뒤엔 인구가 줄어들고 노동력 부족이 가시화 되리라는 전망이다.

출산율이 다시 오를 가능성은 적다.

초혼연령은 계속 올라가고(남자 29.1세,여자 26.3세) 결혼을 선택으로 생각하는 미혼여성들이 급증하는데다 결혼해도 한자녀만 두거나 아예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해지는 까닭이다.

인구증가율 0.8,가구당 평균식구수 3.1명이라는 사실은 결혼과 출산 장려가 남의 나라 일이 아님을 입증한다.

물론 인구밀도는 1평방km당 4백62명으로 팔레스타인과 방글라데시에 이어 세계 3위고 경제사정 또한 좋지 않다.

그래도인구수와 단결력은 곧 민족의 힘이다.

유태민족 사이에 유행하는 "8분미팅"은 되도록 동족의 짝을 만나 절대인구를 늘리려는 시도라고 한다.

무슨 산업이든 인구가 1억명은 돼야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뿌리를 든든히 할수 있다고도 한다.

우리 인구는 남북한 합쳐 7천만명 조금 넘는다.

새해엔 7천만 동포 모두 "힘껏 뛰고 마음대로 웃고 힘을 다해 추수할수 있는" 한해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