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라연 < 시인 bry926@hanmail.net >

''내일은 있다''라는 문장 하나가 설산(雪山)에서 새순처럼 돋아난다.

무명(無名)하나 공허하지 않는 생을 일구시는 분들이 틔운 새순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팔순까지는 남편 자식 도움 없이 보람된 나날을 실천하시려는 65세 한 할머니의 창조적 의지가 떠올라서다.

10년 전부터 양수리에서 독특한 국수와 매실차 모과차 등으로 카페를 성공적으로 이끌어오신 분이시다.

그러나 지금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이미 경쟁력을 잃은 사업이기에 좀더 오지로 들어가서 카페 겸 민박집을 경영해 그 할머니만의 향기와 무늬로 또 한번 승부를 걸고 싶어 하셨다.

단순한 의지가 아니라 현실감 넘치는 계획과 실행방식을 조목조목 들려주시는데 솔직히 등이 서늘했다.

저 당당한,저 정당한 생의 대응방식을 무엇으로 이식시켜 돌아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듣는 이들을 잠깨우고 있었다.

수년동안 관절염으로 양손 모두 반쯤 오그라들어 집안 살림을 제대로 꾸려나갈 수 없는 50대 주부 학생이 또 그 새순 중의 하나다.

그런 조건 속에서도 당당히 의과대학에 합격한 아들이 있으며,틈을 내어 사회교육원의 시 창작반에 나오신 것이다.

"그동안 죽고 싶은 마음도 들었겠네요"하면 "너무 아파서 그런 생각을 할 틈조차 없었다"고 그 분은 말했다.

그런데 그 분이 며칠전 택배로 선물을 보내왔다.

풀어보니 ''13년만에 처음으로 손수 담근 김장 김치와 고추장''이라는 메모속에 요즘의 내 상처와 건강을 염려하는 마음이 가득했다.

불편한 글씨체였지만 아픈 회초리되어, 우렁한 호령이 되어 내 종아리와 귀를 때렸다.

이슬 한방울의 무게 만으로도 저승을 힘껏 밀어내는 분이신 것이다.

''결혼 생활 40여년을 정리해보니 모파상의 목걸이 같았다''고 하시던,그런데도 베란다의 화초들이 가족인양 대화하는 것을 시작으로 하루의 문을 여시는 분도 새순처럼 떠오른다.

10대의 꿈이었던 시 공부를 젊은이 못지 않게 열심히 하시는 그 분의 습작 시들은 ''내일은 있다''고 외치는 것 같아서다.

올해는 제야의 종소리 속에 다시 들이닥친 경제난으로 인해 상처받은 이들의 울음소리가 섞여 에밀레 종소리처럼 들릴지라도,무명(無名)하나 설산에서 내일의 새순을 피워내는 분들이 있는 한,종소리의 맨끝을 물들이는 색은 연두색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