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는 김우중 회장의 경영철학은 고도성장시대에는 제대로 맞아떨어졌다. 하지만 90년대 들어 세계적인 공급과잉-디플레이션시대가 도래했는데도 과거 방식을 고집한 결과 대우는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대우그룹의 해체를 놓고 여러 갈래의 분석들이 많지만 시장 흐름을 무시한 양적 팽창과 규모의 경제에 대한 맹신이 화근이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대우자동차의 경우를 보자.

대우자동차는 지난 95년부터 98년까지 불과 4년만에 인도 중국 폴란드 우즈베키스탄 우크라이나 이집트 공장을 건설,세계 자동차업계를 놀라게 했다.

같은 시기 국내에서는 군산공장을 준공하고 쌍용자동차를 인수함으로써 90년대초 36만대에 불과했던 생산능력을 2백만대까지 끌어올렸다.

대우가 양산체제로 치달을 때 세계자동차업계는 공급과잉에 대응,제휴합병등 자발적인 구조조정을 서두르고 있었다.

특히 국내 자동차 수요도 고성장기를 지나 안정화 단계로 접어들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우는 시장추세와 정반대로 나간 것이었다.

"대우자동차는 후발주자로서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세계시장의 수요 감소와 수익성을 무시하고 무리한 확장경영에 나섰다. 그렇다고 새 수요를 창출할 정도의 앞선 기술이나 브랜드 파워를 가진 것도 아니었다"(조성재 자동차산업연구소 연구원)

시장에 역행하는 투자는 당연히 자금흐름의 왜곡을 초래했다.

영업이익을 낼수 없자 차입금으로 대부분을 충당하고 분식회계를 동원했다.

이 과정에서 96년까지 2조원대에 머물던 금융권 부채는 97년 4조4천억원,98년 7조1천억원,99년 11조1천억원으로 늘어나 더이상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우자동차 실사를 벌였던 삼일회계법인 관계자는 "대우는 차입을 가능케 하기 위해 해외법인의 지분을 내부거래함으로써 그룹전체는 막대한 이익을 본 것처럼 재무제표를 꾸며 놓았다"고 말했다.

동아건설도 이처럼 외형유지를 위해 시장상황을 무시하고 투자를 감행,파국을 재촉한 사례에 속한다.

동아는 지난 93년부터 붐을 이루고 있던 재건축·재개발사업에 적극 나섰다.

96,97년에는 건설업체들의 과당경쟁으로 수익성이 크게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 처했지만 동아의 투자는 계속됐다.

"도급순위를 중요시했던 최원석 회장의 뜻에 따라 무조건 수주하는 정책을 폈다. 이 때문에 다른 업체들이 기피하는 재건축·재개발사업도 동아에 찾아가면 무조건 해준다는 얘기까지 나돌 정도였다"(동아건설 퇴직 임원)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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