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코아가 다시 일어서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3백50억원에 킴스클럽 화정점을 월마트에 넘겼다.

창업주 김의철 전 회장의 분신으로 통해온 킴스클럽이 외국계로 넘어간 것이다.

김 전 회장이 이같은 소식을 들었다면 남다른 감회에 젖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는 뉴코아를 살리기 위해 친인척 재산까지 털어넣었다.

그러나 뉴코아는 부도를 내고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김 전 회장은 1942년생으로 말띠다.

뉴코아의 상징을 얼룩말로 정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는 타고난 장사꾼이었다.

땅을 보는 안목이 탁월했다.

''부동산의 달인''으로 통해온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장사하는 기술도 뛰어났다.

지난 80년 지금의 뉴코아 강남점 지하 1층에 4백80평짜리 슈퍼마켓을 내고 유통업에 뛰어든지 17년만에 재계 25위로 뛰어올랐다.

한국형 할인점 킴스클럽도 탄생시켰다.

그는 일밖에 몰랐다.

창업 16년만에 첫 휴가를 내 대학 동기들과 해외여행을 갔었다.

전국 점포를 돌아다니면서 현장 직원들과 만나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점포 공사장 바닥에 거적을 깔고 노무자들과 소주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감동한 노무자들이 밤새워 점포를 지어냈다.

김 전 회장의 이러한 면모는 월마트의 창업주 샘 월튼을 빼어닮았다.

그러나 최종 성적표는 대조적이다.

김 전 회장은 뉴코아의 몰락을 막지 못하고 영어(囹圄)의 몸이 됐다.

샘 월튼(91년 골수암으로 작고)은 소매업계의 영웅으로 여전히 추앙받고 있다.

월마트는 GE(제너럴 일렉트릭)나 GM(제너럴 모터스)을 제치고 올해 미국에서 매출 정상에 오를 전망이다.

왜 이처럼 명암이 엇갈리고 말았는가.

김 전 회장은 바깥세상과 담을 쌓았다.

''예스맨''과 ''지당대신''들에 둘러싸였다.

충고자들은 ''왕따''를 당했다.

이 와중에서도 매일 저녁 전국 점포의 매출을 점검하는 데만 매달렸다.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고 만 것이다.

샘 월튼은 어땠는가.

그는 회사를 위해서는 누구든 만났다.

경쟁자든 트집쟁이든 개의치 않았다.

인재 영입에 앞장섰다.

동생 버드 월튼이 평생동지가 되어준것도 행운이었다.

샘 월튼이 세계최대 유통기업을 일군 원동력은 ''사람''이었다.

뉴코아의 새 경영진은 월마트의 성공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할 것 같다.

cd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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