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대한 전력지원을 놓고 의론이 분분하다.

제4차 남북장관급협상에서도 북한은 예의 그 기습적인 협상전략을 구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력지원 문제를 실무협상으로 넘기고,남북경협을 제도적 협상의 틀로 구체화한 것은 지혜로운 선택이었다.

남북협상에서 우리는 교섭하는 일을 두려워해서는 안될 것이기 때문이다.

"당장 50만kW의 전력을 지원해주시오" 참으로 느닷없는 주문이다.

그러나 그동안 북한의 협상관행으로 보아서 이것은 갑작스러운 것이라기 보다는 치밀하게"계산된 것"으로 보여진다.

귀중한 4일간의 회의 일정 중에서 3일을 소위 주적논쟁으로 허비한 것도 전력지원을 끌어내기 위한 그들의 전략일 것이다.

그 정도로 전력은 그들에게 중요하다.

우리는 그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전력은 우리에게는 더 중요하다.

구조조정으로 수많은 실업자들이 찬바람 부는 거리로 나서는 이 때에 수천억원이 들어가는 전력지원 사업을 간단히 결정할 일이 아니다.

더욱이 그것은 식량지원처럼 한번이나 두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야당에서 반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북한 진출기업들의 노무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남북경협이 이름뿐인데도 전력만 지원된다고 가정해 보면, 그 모양새가 심상치 않다.

남북경협에서 보다 본질적인 것은 남북노동협력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북한의 체제유지와 관련되어 있다는 이유 때문에 모두 필요한 줄은 알지만 감히 거론하기 꺼리고 있다.

가히 유구난언의 형세이다.

그러나 남북노동협력을 주장하는 것은 그렇게 나쁜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노동협력은 북한의 노동관리 시스템의 변화를 통해서 남북경협의 실효성을 높이자는 것이다.

중국을 보면 노동관리 시스템의 변화를 통해서 경제발전을 가져왔지만 체제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있다.

중국의 경우 대외개방 첫해인 1979년부터 4년 동안 외국의 기업들은 거의 투자하지 않았다.

투자기업은 1979년에 단지 10개,1980년에 29개,1981년에 29개,1982년에 20개에 불과했다.

이것은 경직된 노동관리 시스템 때문이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현명하게도 1982년 선전지역에서 계약고용제에 대한 실험을 시도했고,너무 좋은 결과에 놀란 국무원이 기업들에게 계약고용제를 적극적으로 시도할 것을 지시했다.

모든 지방과 주요 도시들이 계약고용제를 시도했던 1983년에는 1백7개 기업이,그 다음 해인 1984년에는 무려 7백41개의 기업이 투자를 했다.

이러한 외국인투자를 통하여 중국은 외자도입의 이자를 물지 않아도 되었으며,수출을 확대할 수 있었다.

또 외환수입을 증가할 수 있었으며,수입을 대체함으로써 외화지출을 절약할 수 있었다.

동시에 중국기업은 공동경영을 통하여 생산.관리 및 판매의 기술을 습득할 수 있었다.

북한도 이러한 진실을 안다면 구태여 노동협력을 거절하기보다는 반겨야 할 것이다.

특히 미국과 벨기에 같은 국가들이 북한 투자를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어찌 노동협력에 관해서 유구무언이 미덕인가.

적어도 28~30일 평양 "제1차 남북경협추진위원회"에서는 전력지원과 노동협력의 문제가 동시에 논의돼야 할 것이다.

모름지기 협상이란 밀고 당기는 묘미가 있어야 제맛이다.

이것마저 없다면 싱거워서 그게 어디 협상인가.

고생하면서 도달한 전력지원에 대한 우리 협상단의 결정을,경제가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비난하는 것도 경계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전력만 지원하는 우 또한 경계의 대상이다.

북한이 체제유지에만 신경을 써서 남북노동협력에 마음을 열지 못하는 것은 현명한 처사가 아닐 것이다.

나뭇잎 하나가 눈을 가리면(一葉障目), 눈 앞에 있는 거대한 태산도 보이지 아니하는 법이다(不見泰山).

남북경협에 대한 논의는 언제나 남과 북 양쪽 모두의 승리(윈-윈)라는 관점에서 전개되어야 한다.

남북의 관계자들이 부분적인 현상에만 미혹되어 전체를 보지 못하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

yoonkim@kyungnam.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