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 건설업체로 촉망받던 성원건설의 침몰(화의)은 ''기업이 커지려면 금융업에 진출해야 한다''는 환상을 깨버린 대표적인 사례다.

대한종금을 인수한 것 자체가 ''배보다 배꼽이 더 컸던'' 모험이었다.

동시에 적성에 맞지 않은 ''이(異)업종''진출은 자칫하면 ''모기업까지 말아먹는다''는 교훈을 되새기게 했다.

성원건설은 신도시 아파트건설 붐을 타고 ''떼돈''을 벌어 사세를 확장하고 있었지만 자산규모는 6천억원대에 불과했다.

그런 회사가 당시 종금업계에서 1,2위를 다투던 3조~4조원 자산의 대한종금을 인수했으니 무리가 아닐 수 없었다.

화의중인 성원건설의 첫 관리인을 지냈고 현재는 파산절차가 진행중인 대한종금의 파산관재인으로 있는 이강록씨가 말하는 인수배경.

"성원건설은 아파트 사업이 잘되자 자신감이 지나쳐 신흥재벌을 꿈꿨다. 당시 금융업 진출은 ''성원류''의 기업주들에겐 ''필수코스''처럼 인식되고 있었지만 공격적인 건설업으로 큰 성원이 보수적인 금융업에 손댄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었다"

성원건설은 대한종금을 인수한 이후 이 회사의 자금지원을 토대로 상호신용금고 할부금융 창투사 파이낸스 등 금융업체를 잇따라 설립하거나 인수했다.

그러나 여기까지가 한계였다.

성원건설은 건설업 침체로 자금사정이 나빠졌고 튼튼한 자금줄로 믿었던 대한종금이 기아자동차 부도로 97년 12월 1차 영업정지를 당하면서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이어 금융권에서 차입금 회수에 나서면서 성원건설은 자금사정이 더욱 악화됐고 자금을 메워줬던 대한종금이 99년 4월 2차 영업정지를 당하자 성원건설은 결국 3개월 뒤인 그해 7월 화의를 신청하기에 이른다.

''겟 유스트''''보이 런던''등의 브랜드로 국내 청바지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했던 보성그룹의 실패도 섣부른 금융업 진출로 낭패를 당한 전형적인 사례.

보성어패럴은 97년 11월 중견 종금사인 나라종금을 전격 인수했다가 불과 한달뒤인 12월 나라종금의 1차 영업정지라는 ''날벼락''을 맞았다.

당시 금융계에선 IMF 구제금융과 관련,''정부가 서울은행과 제일은행을 살리는 대신 종금사 몇개를 날린다더라''는 소문을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었지만 금융에 문외한이었던 보성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나라종금 인수는 한마디로 정보부족이었다. 당시 종금사들은 기아자동차와 한보철강 부실 등으로 모두 유동성 부족에 몰려있던 상황이었지만 보성은 이런 내막을 모른채 싼값으로 나왔다는 사실에만 고무돼 덜컥 인수했다가 덫에 치인 것"(H종금 K부장)

보성은 98년 5월 이후 1천억원 이상의 증자를 실시해 거액을 쏟아부었지만 상황을 돌이킬 수 없었다.

청바지시장도 IMF 한파로 위축돼 자금사정을 더욱 압박했다.

급기야 올해 1월 나라종금에 대해 2차 영업정지 명령과 함께 인가취소 결정이 내려지자 보성어패럴 세우포리머 보성인터내셔날 등 보성그룹은 줄줄이 도산하고 말았다.

이들 업체는 앞서 거평이 지난 96년 새한종금을 인수했다가 침몰하고 말았던 사례를 눈여겨보지 않았던 것이 큰 실착이었다.

문희수 기자 m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