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국면전환용 합병발표?
내용도 "합병에 합의했다"는 원칙적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해 "급조된 발표"라는 느낌을 강하게 줬다.
김상훈 행장은 이날 오후 12시30분께 은행에 출근,파업대책을 논의한 뒤 누군가로부터 연락을 받고 오후 1시30분께 은행을 빠져나왔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오후 3시에 약속이 있다"고만 설명했다.
김정태 주택은행장도 3시이전에 시내 모처로 이동했다.
금융계에서는 두 은행장이 모여 파업대책과 합병추진에 대해 의견을 나눴을 것으로 단순히 추측했다.
상황이 급반전된 것은 오후 4시30분께.
두 은행간 합병 발표가 있을 것이라는 소식이 나왔다.
이번에도 여느때처럼 소식통은 금융감독위원회였다.
정건용 금감위 부위원장은 "김상훈행장과 김정태행장이 잠시후 한국은행 기자실에서 두 은행간 합병을 공식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오후 4시50분께 두 행장은 수행원 몇 명만을 대동하고 한은 기자실에 들어왔다.
김상훈 행장은 미리 준비한 기자회견문을 읽어내려갔다.
김정태 행장은 옆자리에서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김상훈 행장은 이어 취재진의 몇몇 질문에 간단하게 대답한 뒤 기자회견을 10분만에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치 "합병선언"을 하는 것이 큰 죄를 짓는 일인냥 서두르는 모습이었다.
석연치 않은 구석은 또 있었다.
두 행장은 "오후에 만나 합병합의서에 서명했다"고 밝혔지만 "합의서는 가지고 오지 않았다"는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했다.
또 참고 보도자료에도 "존속법인과 합병이름명은 국민은행으로 한다"는 문구를 적어놓고 "과거에 검토했던 내용"이라고 해명했다.
갑자기 발표를 하게 되다보니 과거 자료를 그대로 보도진에게 배포한 것이다.
이를 두고 금융계 한 관계자는 "정부가 국면전환을 위해 두 은행의 합병을 종용한 것 아니냐"고 해석했다.
전날 노.정합의에서 정부가 노조에 밀려 "금융구조조정이 물건너 갔다"는 여론이 일자 서둘러 두 은행으로 하여금 합병을 발표토록 밀어붙였다는 의구심이었다.
김준현 경제부 기자 kim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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