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기습적으로 발표된 국민-주택은행간 합병 선언은 국내 최대 은행의 탄생을 알리는 "약혼식"치고는 너무 초라했다.

내용도 "합병에 합의했다"는 원칙적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해 "급조된 발표"라는 느낌을 강하게 줬다.

김상훈 행장은 이날 오후 12시30분께 은행에 출근,파업대책을 논의한 뒤 누군가로부터 연락을 받고 오후 1시30분께 은행을 빠져나왔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오후 3시에 약속이 있다"고만 설명했다.

김정태 주택은행장도 3시이전에 시내 모처로 이동했다.

금융계에서는 두 은행장이 모여 파업대책과 합병추진에 대해 의견을 나눴을 것으로 단순히 추측했다.

상황이 급반전된 것은 오후 4시30분께.

두 은행간 합병 발표가 있을 것이라는 소식이 나왔다.

이번에도 여느때처럼 소식통은 금융감독위원회였다.

정건용 금감위 부위원장은 "김상훈행장과 김정태행장이 잠시후 한국은행 기자실에서 두 은행간 합병을 공식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오후 4시50분께 두 행장은 수행원 몇 명만을 대동하고 한은 기자실에 들어왔다.

김상훈 행장은 미리 준비한 기자회견문을 읽어내려갔다.

김정태 행장은 옆자리에서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김상훈 행장은 이어 취재진의 몇몇 질문에 간단하게 대답한 뒤 기자회견을 10분만에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치 "합병선언"을 하는 것이 큰 죄를 짓는 일인냥 서두르는 모습이었다.

석연치 않은 구석은 또 있었다.

두 행장은 "오후에 만나 합병합의서에 서명했다"고 밝혔지만 "합의서는 가지고 오지 않았다"는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했다.

또 참고 보도자료에도 "존속법인과 합병이름명은 국민은행으로 한다"는 문구를 적어놓고 "과거에 검토했던 내용"이라고 해명했다.

갑자기 발표를 하게 되다보니 과거 자료를 그대로 보도진에게 배포한 것이다.

이를 두고 금융계 한 관계자는 "정부가 국면전환을 위해 두 은행의 합병을 종용한 것 아니냐"고 해석했다.

전날 노.정합의에서 정부가 노조에 밀려 "금융구조조정이 물건너 갔다"는 여론이 일자 서둘러 두 은행으로 하여금 합병을 발표토록 밀어붙였다는 의구심이었다.

김준현 경제부 기자 kim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