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이 넘도록 엎치락 뒤치락했던 미국 대통령 선거가 조지 부시 후보의 승리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나와 리버만에게 표를 던진 5천만 유권자들이 연방 대법원 판결에 실망했음을 알고 있다.나도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다.그러나 우리의 실망을 미국에 대한 사랑으로 연결시키자"라고 자신의 유권자들까지 다독거리면서 패배인정 선언을 하는 고어를 TV방송을 통해 보면서 미국의 힘은 바로 ''진 사람이 제대로 질 줄 아는'' 바로 그것에서 나온다는 것을 느꼈다.

누구나 살다 보면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다.

이길 때 아름다워지는 것은 조금만 신경을 쓰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 여겨진다.

인간의 욕망과 그 성취를 인정하는 자본주의라는 체제 자체가 성공을 아름다운 것으로 미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성공시대''라는 프로그램을 본 적은 있지만,''패배시대''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러므로 이긴 자는 특별한 오만과 광기에 빠지지만 않는다면 그럭저럭 아름다움의 포즈를 취할 수가 있다.

그냥 있어도 모든 찬사가 따라가고,그냥 있어도 그의 모든 것이 미덕으로 널리 퍼져갈 테니까.

그러나 승리만을,욕망의 성취만을 아름다움의 신화로 미화시키고 승자에게서만 배우려고 하는 뜨거운 세속성을 가진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모든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성공의 담론에 제동을 걸 수 있는 ''또 하나의 담론''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

그것은 아주 어려서부터 모든 사람에게 교육돼야 할 것 같다.

성공하는 데에도 뭔가 특별한 훈련이 필요하겠지만,아무래도 이기는 사람의 숫자 보다 지는 사람의 숫자가 많을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 사회다.

그러므로 패배를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훈련이 어릴 때부터의 교육과정 속에 반드시 있어야 할 것 같다.

그렇다고 ''제대로 지는 법''을 알기 위해 멋진 패배인정 연설문을 남긴 앨 고어에게 어려서부터 어떤 교육을 받았기에 그런 멋진 패배 인정을 할 수 있느냐고 전화를 걸어 물어볼 필요는 없다.

성공은 물질에 속하는 영역이지만,패배는 정신의 영역으로 넘겨지는 것이기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자신이 꼭 받아야만 하는 인생의 쓰디쓴 것이 있다면,그것을 정신의 힘으로 멋지게 극복해내야 한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훈련받아야 하는 것이다.

바로 거기에 철학과 문학의 가치와 힘이 작용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한국 사회처럼 원칙이 불투명하고 또 원칙이 있으되 잘 지켜지지 않는 사회,심판이 있으나 그 심판의 공정성이 의심을 받고,그렇기 때문에 그 심판의 판결을 믿을 수 없는 사회에서는 이기는 것도 지는 것도 다 명예와는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그래서인지 이긴 사람도 진 사람도 제대로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지 못하고 나머지 평생을 단지 원한과 공격심리,또는 피해의식과 방어심리로 서로를 헐뜯으며 지내는 것을 많이 본다.

이기는 자도 지는 자도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고,그래서 이기는 것의 추악함 못지 않게 지는 것의 추악함을 나날이 타인에게 보이는 것이다.

철학의 부재요,정신성의 결핍이다.

정신으로 극복해내는 ''수용의 미학''이 우리에겐 빈곤하다.

그래서 나는 제안해보고 싶다.

''성공시대''만 만들지 말고 ''패배시대''도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고.

자신의 패배를 멋지게 인정하고 그 쓰디쓴 것을 수용해 실망을 사랑으로 연결시켜 자신에게,또 타인에게 건강한 평화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운좋게 성공한 모습 보다 훨씬 더 멋진 것이 아니겠는가.

성공의 광기에 우리 사회는 너무 시달리고 있다.

일부 벤처기업가들의 아찔한 행태가 그것을 이미 많이 보여 주었다.

건강한 평화를 갖고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고 아름답게 수용하는 것,그것은 돈이나 권력의 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어쩌면 어릴 때 읽은 한권의 책에서 나올 확률이 훨씬 더 클 것이다.

◇필자 약력=△서강대 영문과졸업 △서강대 국문과 교수 △시집 ''빗자루를 타고 달리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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