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업계가 고사(枯死)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의약분업이 시행된 뒤 ''오리지널 브랜드''와 막강한 ''재력''으로 중무장한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국내시장을 급속히 잠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약효가 뛰어난 외국약품을 주로 처방, 국산 약품은 설자리를 잃고 있다.

이로 인해 저가 덤핑으로 버텨 오던 영세 제약사들은 연쇄도산을 목전에 두고 있다.

20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외국 제약사들은 올해 어림잡아 40% 안팎의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추산된다.

국내 유명제약사 판매신장률의 2∼3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작년에 3백71억원어치의 약품을 판매한 한국MSD는 올해 75.2% 증가한 6백50억원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보고 있다.

''코자''(고혈압 약) ''포사맥스''(골다공증 치료제) ''조코''(고지혈증 약) 등의 판매가 작년보다 1백% 이상 늘어난 결과다.

한국화이자는 매출액이 지난해 8백62억원에서 올해는 1천1백50억원으로 33.4% 증가할 전망이다.

지난 여름 직원들이 한 달여 동안 파업을 벌였는데도 매출액이 목표를 초과했다.

한국그락소웰컴은 47.1% 성장한 8백60억원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 회사의 먹는 B형간염 치료제 "제픽스"는 작년보다 1백70%나 급증한 2백90억원의 판매고를 기록하며 초대형 품목으로 자리를 굳혔다.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재력"을 배경으로 병.의원을 무차별적으로 공략하고 있다.

B사는 내년에 발매할 고혈압 치료제를 홍보하기 위해 국내 주요 병원의 의사들을 무더기로 동남아로 보내 현지에서 세미나를 개최했다.

A사는 1백20여명, J사는 1백여명의 의사를 최근 제주도로 초청, 생산약품에 대한 학술행사를 열었다.

비용 규모도 국내사와는 비교가 안되지만 이들은 세미나 등에 들어가는 경비를 외국 본사에서 부담하기 때문에 회계처리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불법 리베이트"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최근에는 "동네의원"까지 공략하고 있다.

이를위해 국내 제약회사의 연업인력을 무더기로 빼내가고 있다.

이 때문에 국내 제약회사들은 매출부진에 마케팅 인력난까지 겹쳐 이중고를 치르고 있다.

이같은 상황은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 시장이 좋다는 소문이 나면서 외국사들의 진입은 문전성시다.

지난 1년동안에만 문디파마코리아 한국갈더마 등 해외의 내로라하는 제약사들이 거의 다 들어 왔다.

여기에다 국내에 공장이 없어도 보험약 등재가 가능해지고 국내 임상시험 규정도 완화되는 등 영업환경까지 외국사에 유리하게 조성되고 있다.

반면 국내 제약사들의 매출중가율은 대부분 한자릿수다.

종근당 5.6%, 동화약품 6.0%, 대웅제약 8.6%에 머물렀다.

전문약과 유명브랜드가 많은 동아제약과 중외제약 등만 매출증가율이 20%를 간신히 넘었다.

그나마 의약분업으로 지난 여름 갑자기 가수요가 몰린 덕이다.

지금 추세로 가면 영세제약사들은 내년 중반께부터는 ''연쇄도산''의 먹구름을 피하기 어려울 것 같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