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자정 국민은행 명동 본점 7층의 행장실 앞 복도.

김상훈 행장이 피곤에 지친 표정으로 노조원들 앞에 섰다.

"노조원 여러분들의 의견을 받들어 주택은행과의 합병논의를 일단 중단하겠습니다" 짤막한 말을 남긴 김 행장은 "일단 중단이 아니라 완전철회해야 한다"는 조조원들의 아우성을 뒤로한채 쫓기듯 다시 행장실로 들어갔다.

노조원들은 주택은행과의 합병발표가 임박했고 배후에 정부가 있다고 판단, 12일부터 농성에 들어가 김행장을 사실상 감금했다.

합병문건에 사인하지 못하도록 행장실로 들어가는 문건도 검열(?)했다.

한편 국민은행의 합병 파트너인 주택은행의 김정태 행장은 김상훈 행장과 같은 고초를 겪지는 않았지만 역시 노조원들로부터 상당히 시달려야 했다.

사실 국민은행과 달리 주택은행 노조는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비교적 조용한 편이었다.

때문에 김정태 행장은 국민은행장의 감금을 안타까워할 만큼 상대적으로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주택은행도 오후들어 분위기가 달라졌다.

주은 노조원들도 행장에게 "국민은행과의 합병을 추진할 것인지 확실히 대답해 달라"고 요구하며 본점으로 집결했다.

이들은 자정까지 농성을 계속하다 결국 김상훈 국민은행장이 합병논의 중단을 선언했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농성을 풀고 귀가했다.

"두 은행장은 이같은 사태추이를 예견했을 겁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서로 ''국민+주택합병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지 않습니까. 인력과 점포 감축이라는 희생이 너무 클 것이라면서 고개를 저었단 말입니까. 그런데 왜 그렇게 서두르는지 모르겠어요. 정부가 등을 떠밀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한 노조원은 이날 벌어진 일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또다른 노조원은 더 냉소적인 해석을 덧붙였다.

"하긴 은행장들도 우리의 이런 강경한 자세를 바랄지도 모르죠.그래서 합병이 안되면 좋은 변명거리가 되니까요"

은행 합병이 경영진과 노조원간의 갈등과 불신에 발목이 잡혀 파행으로 치닫고 있었다.

이상열 경제부 기자 mustaf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