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동대문 부근은 조선이 처음 도성을 쌓을 때부터 말썽이 많던 곳이었다.

도성안의 모든 물이 모여서 빠지는 데가 여기여서 지대가 습하고 웅덩이가 많았다.

먼저 말뚝을 박고 돌을 채운 다음 성을 쌓아야 했기 때문에 다른 지역보다 배나 힘이 들었다.

''실록''등 당시의 기록을 보면 그렇게 적혀 있다.

속칭 동대문으로 불렸던 도성 정동(正東)의 문인 흥인문(興仁門)이 세워진 것은 1396년 가을이다.

뒤이어 이듬해 4월에는 옹성이 완공됐다.

다른 4대문에는 없는 옹성을 동대문에만 쌓은 이유는 분명치 않지만 서울은 동쪽이 평탄하여 가장 허전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것이 사가들의 추측이다.

동대문의 현판을 뒤에 ''흥인지문(興仁之門)''이라 한 것도 허전한 곳을 보강하려는 비보(裨補)의 뜻이 함축돼 있다는 풀이가 지배적이다.

동대문은 창건 50여년이 지나 단종때인 1453년 중수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후에도 때때로 보수는 계속됐겠지만 4백여년이 지난 고종6년(1869)에 개수했다는 기록만 전한다.

당시 동대문의 터가 내려앉아 땅을 8척이나 돋우고 새로 홍예(아치형 문)를 쌓고 문루도 다시 지었다는 것으로 미루어 개축에 가까운 공사였다.

지금의 동대문 문루는 1958년 대대적으로 보수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옹성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북쪽부분이 훼손돼 없어진 채 밑부분만 남아 있었다.

서울시가 금년 4월 복원을 끝내 오랜만에 원형을 되찾았던 동대문 옹성이 다시 해체되고 있다고 한다.

일제때 사진 등 기록만 보고 윗부분을 복원했지만 그 무게를 이기지못해 다른 성벽까지 무너질 위험에 처했기 때문이란다.

사전에 남은 성벽이나 그 지하구조를 면밀히 조사하지않고 착수한 부실공사다.

보물1호 복원공사가 이 지경이라면 다른 문화재는 말할 것도 없다.

문화재청은 공사가 끝난 뒤 보수명령만 내리면 되는 곳인지 묻고 싶다.

지난 95년 안전검사 결과 동대문이 북쪽으로 6~7㎝나 기울어져 그대로 방치할 경우 문루도 붕괴될 수 있다고 지적한 것은 문화재연구소가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옹성의 문제만도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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