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 인권,남북화해와 협력의 공으로 김대중 대통령이 영예의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그는 이 자리에서 경천애인(敬天愛人)의 휘호를 선물하면서 동양문화 안에 민주주의와 인권의 깊은 사상적 뿌리가 있음을 역설했다.

이것은 서구의 우월의식으로 동양을 폄하했던 종래의 동양관(東洋觀)과는 사뭇 다른 것이다.

이에 반해 인권을 서구적 가치로 간주해온 사람들은 동양문화와 인권을 대립적인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여기에는 정반대의 두가지 입장이 있다.

하나는 인권을 서양의 개인주의 화신으로 여겨 이를 거부하면서 동양의 공동체적 질서를 옹호한다.

다른 하나는 동양의 권위주의를 무너뜨리기 위해 서양의 인권사상과 제도에 의존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동양문화 안에서 보편적 인권의 요소를 찾으려는 노력은 본말이 전도된 쓸모 없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단순화시켜 전통주의자들은 동양문화를 서구의 눈으로 재단한다고 비난한다.

반대로 전투적 인권운동가들은 동양의 전제권력을 희석시킨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이런 대립적인 견해는 어느 것이건 옳지 않다.

역사적으로 인권제도는 서구가 주도한 것이 사실이나 오늘날의 국제질서에서 보편적 기준이 되고 있는 인권의 규범에 관해 여러 문화 사이의 강제없는 중복합의의 가능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양문화 안에서,동양의 눈으로,서구와 대화할 수 있는 인권의 개념과 기준을 찾는 노력은 귀중한 의미를 갖는다.

이를 위한 하나의 방법은 인권과 동양문화를 보완적인 관계로 보는 것이다.

직장에서 사용자와 노동자가,또는 학교에서 교사와 학생이 자신의 권리만을 배타적으로 주장한다면 공동체는 분명 살벌해질 것이다.

그러나 역지사지(易地思之)로 상대를 배려하는 문화가 작용하면 권리의 향유와 함께 공존과 화해가 용이해진다.

따라서 개인의 선택에 초점을 맞춘 인권제도의 확충과 함께 상호배려의 동양문화를 양육하는 것은 분명 지혜로운 일이다.

보다 적극적인 방법은 인권을 구성하는 동양문화의 독특한 요소들을 발굴하는 것이다.

한예로 가족을 보자.서구의 관점에서 보자면 인권은 결국 개인이 향유할 수 있는 다양한 가족형태의 선택 가능성으로 나타난다.

이혼은 물론이고 미혼모 가족,동성 가족 등도 허용된다.

페미니스트는 이것을 여성해방으로 볼 것이다.

그러나 기존의 가족제도는 무너지며,그 결과가 어떠할지 미래를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동양의 관점에서 보자면 가족은 그렇게 해체돼도 괜찮은 제도가 아니다.이것은 사회의 존립을 위협하는 것이다.그렇다고 가부장주의 문화를 옹호할 뜻은 추호도 없다.이 오래된 전통이 고쳐지지 않는 한 여성의 저항은 갈수록 세질 것이다.

때문에 가부장주의 유산의 근본적인 개혁과 함께 과도한 개인 위주의 사조가 가져오는 공동체 파괴의 해악을 막는 이중적인 장치가 필요하다.

말하자면 우리는 개인의 권리만이 아니라 공동체의 권리를 생각해볼 수는 없는가? 식물과 동물의 권리,후세대의 권리 등도 주장되고 있는데,개인이 모인 공동체의 고유한 권리를 재구성할 수 있을 것 같다.

예컨대 가족의 존립과 지속에 필요한 비억압적이고 양성평등적인 행위 준칙들을 만들어 이를 교육하고 지켜 가는 운동을 펼 수 있다.

충서(忠恕)의 현대적 해석 등으로 이런 문화를 재건할 수 있다.

그리하여 가족관계가 파괴된 뒤 개인의 탈출과 선택을 강조할 것만이 아니라,그 전에 좋은 가족을 만드는 권리를 우선하는 발상전환을 할수 있다.이를 위한 문화와 제도의 얼개를 새롭게 짤 수도 있다.

다른 한편 동양문화에는 강한 민본주의 전통이 있는 만큼 이를 살려 인권의 실체적 측면을 강화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정치적 시민적 자유만이 아니라 빈곤으로부터의 해방을 이끌고 지원하는 장치를 인권정책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자면 장차 북한에 대한 경제지원과 협력추구에 있어 인간개발이나 빈곤타파와 같은 유연한 정책으로 이를 포장해,비판받는 미국의 대외정책과 달리,민본(民本)의 내실을 기하는 인권정책을 발전시키는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고 할수 있다.

sjinhan@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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