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안팎의 젊은이들이 뿜어내는 열기와 자유로 도쿄에서도 ''영 파워''의 거리로 첫 손가락에 꼽히는 시부야(澁谷).

도쿄를 에워싸고 도는 야마노테선과 게이오센, 도쿄선이 만나는 전철역 앞 서쪽 광장에서 사람의 숲을 헤치고 빠져 나가면 앞을 가로지르는 대로와 화려한 상가 건물들이 시선을 빼앗는다.

길을 뒤덮은 인파와 귀를 때리는 음악소리, 오가는 젊은이들의 현란한 패션은 전형적인 다운타운의 분위기를 담고 있다.

흥청대는 거리 모습에서는 생산적 에너지를 좀처럼 느끼기 어렵다.

그러나 속사정을 들여다 보면 그게 아니다.

시부야역 앞 광장의 충견 ''하치코오(公)'' 동상을 중심으로 반경 약 5㎞ 전후의 건물을 뒤져 보면 시부야의 인상은 1백80도 달라진다.

21세기 IT(정보기술) 강국을 노리는 일본의 인터넷혁명 심장부가 일본인들이 흔히 비트 밸리(Bit Valley)로 부르는 이곳이기 때문이다.

비트 밸리에는 첨단 인텔리전트 빌딩이나 하이테크 공장이 거의 없다.

올 봄 도큐그룹이 완공해 호텔, 쇼핑, 철도역사, 오피스용 등 다목적으로 쓰고 있는 ''마크 시티''를 제외하면 대다수가 오래 전에 지어진 건물이 거리를 차지하고 있다.

일본 매스컴에서는 ''디지털 생태계''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이고 있지만 비트 밸리의 생성과정은 자연발생적이면서 규모도 빈약했다.

비트 밸리 태동의 핵심 인물로 꼽히는 넷이어의 고이케 사토시 사장, 넷에이지의 니시카와 기요시 사장 등 인터넷 기업 경영자들이 하나 둘 모여 친목모임을 가지면서 흐름이 급속히 퍼져 나갔을 뿐이었다.

이들은 당초 미국 뉴욕의 실리콘앨리에 있는 커뮤니티 NYNMA(New York New Media Association)를 벤치마킹해 벤처기업의 홀로서기를 지원하는 커뮤니티를 만드는데 1차 목표를 두었다.

니시카와 사장이 지난해 3월 ''시부야를 벤처의 본바닥으로 키워 보자''는 비터(Bitter) 밸리 구상을 내놓은 것을 계기로 불을 댕긴 이들은 상호교류, 정보교환을 위해 비영리단체를 만들었다.

여기에 비트 밸리 어소시에이션(BVA)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니시카와 사장이 제안한 비터는 ''쓰다''는 뜻의 일본말인 ''시부''와 ''계곡''을 뜻하는 ''야''를 영어로 옮긴 것인데 이미지가 부정적이라고 해서 곧 정보량의 단위를 뜻하는 ''비트''로 바뀌었다.

시부야 일대에 일본의 벤처기업이 얼마나 많이 몰려 있는지는 후지종합연구소의 조사결과만 봐도 금방 알 수 있다.

도쿄도 23개구의 인터넷 벤처 수는 올 상반기말 기준 1천2백79개사에 달한다.

이중 시부야에는 2백4개사(16%)가 둥지를 틀고 있으며 인접한 미나토구를 합칠 경우 이들 2개구 만으로도 전체의 37%를 차지한다.

벤처들이 시부야 일대로 몰려 들면서 BVA는 순식간에 일본 인터넷 혁명의 발신기지로 자리잡았다.

수십명에서 출발한 이 모임은 불과 1년도 못된 지난 1월말로 회원수가 4천6백명을 넘었다.

월 1회씩 개최하던 만남의 장(場) ''비트 스타일''은 초기 1백50명 정도가 참가했으나 참가자가 급증, 지난 2월 록퐁기에서 열린 모임에는 무려 2천명 이상의 인파가 몰리기도 했다.

이날 스위스에 나가 있던 손정의 소프트뱅크 사장이 전세기로 급거 귀국했으며 하야미 마사루 일본은행 총재와 소니의 이데이 노부유키 사장 등 거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일본 벤처업계는 시부야에 벤처 기업들이 몰린 가장 큰 이유로 임대료가 싼데다 분위기가 도쿄의 어느 곳보다 자유롭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비트 밸리에는 이제 넷이어, 옐넷, DeNA, 인디고, 호라이즌 디지털,아스키, 가이악스 등 인터넷 대국의 희망을 짊어진 쟁쟁한 일류 벤처들이 자리잡고 있다.

비트 밸리 열풍은 이제 도쿄의 도심 한복판에만 머물지 않고 있다.

지바 등 도쿄 인근 지역뿐 아니라 오사카 나고야 후쿠오카 삿포로까지 열기가 퍼져 나가면서 일본 열도 전역에서 벤처 창업의 기폭제가 되고 있다.

IT전문 평론가로 손꼽히는 닛케이BP의 아라이 히사시 상무는 "일본의 정보혁명은 착실히 진행되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비트 밸리의 젊은 e벤처들이 있다"고 지적했다.

도쿄=양승득 특파원 yangsd@hankyung.com

---------------------------------------------------------------

[ 특별취재팀 ]

<> 정보과학부 : 김철수 송대섭
<> 벤처중기부 : 김태철
<> 영상정보부 : 김영우 김병언
<> 특파원 : 양승득(도쿄) 정건수(실리콘밸리) 육동인(뉴욕) 한우덕(베이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