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전 시중에는 ''교통경찰관 괴담''이 유행했었다.

사이드카를 타고 기동순찰을 하는 경찰관이 교통사고로 발목이 부러져 응급실로 실려왔는데 가죽장화를 안벗겠다고 버텼다.

그러나 치료를 위해 끝내 벗기고 보니 그 속에 수십만원의 현찰이 있더라는 내용이었다.

장화 속에서 나온 돈의 액수는 괴담이 퍼질수록 증가되어 한때 5백만원까지 올라갔다.

근거없는 소문이 확산되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일이다.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이 심화된 이유를 찾던 한 회계학 교수가 ''결합재무제표''라는 발상을 내놓았다.

''대기업 오너 한사람의 영향권에 있는 기업의 재무제표를 모두 통합시키면 대기업의 실체가 모두 드러나 단속이 쉬울 것''이라는 일반인이 보기에는 그럴싸한 주장이었다.

얼핏 보기에는 기발한 발상에 대해 회계학 비전문가인 경제학자들과 정치가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경제전문가가 ''결합재무제표만 작성되면 계열기업간 차입 위주의 방만한 경영문제는 거의 자동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주장을 신문 칼럼에 게재했다.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당시 여당의 정책위 의장이 ''결합재무제표를 도입하면 재벌은 사실상 해체된다''는 주장을 펼쳤다.

당시엔 결합재무제표 작성기준도 마련되지 않아 어떤 모양이 될지 회계전문가들조차 짐작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작성효과''에 대한 기대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었다.

회계학회의 학술발표회장에서는 어떤 모양인지 알수 없는 ''외계인'' 같은 새로운 재무제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그런데 회계전문가 한명 없는 증권선물위원회가 결합재무제표준칙을 제정했고, 이에 따라 16개 대기업이 이 표를 작성하여 지난 7월말에 발표했다.

금융감독원은 16개 대기업의 결합재무제표를 분석한 22쪽 분량의 보도자료를 지난 7월에 홈페이지에 게시했다.

금감원 자료엔 ''외국에서 결합재무제표를 공시한 사례는 없으며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도입된 제도''임을 강조하고 있으며 ''외국기업 재무정보와 단순비교는 적절하지 않다''는 경고문을 포함시키고 있다.

또 결합재무제표는 보편적인 재무제표가 아니므로 인.허가 등 규제의 근거로 활용하기 어렵다는 점을 강조했다.

결합재무제표가 주요 목적으로 하고 있는 ''내부거래 효과 제거''에 대해서도 금감원은 ''기업집단내에서 수직계열화가 이루어지는 경우 내부거래의 비중은 높아질 수밖에 없으므로 내부거래의 비중이 높다는 사실이 반드시 비정상적인 거래가 많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는 경고문을 끼워놓고 있다.

금감원의 분석자료를 보면 도대체 왜 결합재무제표를 만들라고 했는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개별기업 재무제표의 투명성도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를 합산한 결합재무제표의 유용성은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합재무제표가 30대 대기업 모두에 요구되는 것도 아니어서 대기업간 비교에 사용할 수도 없다.

또 계열분리가 계속되고 있는 현대그룹의 경우 1999년의 결합재무제표, 자동차 소그룹이 분리된 2000년의 결합재무제표, 전자와 중공업이 분리되는 2001년의 결합재무제표는 전혀 별개의 것이어서 연도간 비교 목적으로도 사용할 수 없다.

어떤 의미로 해석해야 할지도 분명치 않은 결합재무제표가 비싼 돈을 들여 작성되었고, 금감원 기업공시실의 서가를 차지하고 있다.

고속철도를 건설하기도 전에 미리 사들여온 테제베의 모습처럼 처량하기 짝이 없다.

2000년도분이 작성되면 비교목적으로 쓰일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도,대기업들의 계열분리와 계열사 매각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헛된 꿈이 될 것이 분명하다.

결합재무제표는 ''대기업 괴롭히기'' 수단이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대기업 개혁''의 수단으로 활용될 수는 거의 없다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

더구나 대기업그룹에 소속된 개별기업들의 독자경영을 강조하면서 통합경영을 가정한 결합재무제표의 작성을 의무화하라는 것은 부자연스럽기 짝이 없다.

세계에서 유례없는 재무제표를 추가하기보다 개별기업 재무제표의 투명성 제고가 시급한 과제임을 인식, 결합재무제표 제도의 존폐여부를 검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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