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도시에 살면서도 막상 ''왜 도시에 사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하늘을 덮고 있는 스모그의 띠,정신없이 돌아가는 생활,몸을 부딪치지 않고서는 지나갈 수 없는 거리들….

도시적 삶의 이점을 아무리 찾아도 부정적 측면들만 겹으로 다가온다.

반면 우리가 시골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야 할 이유는 셀 수 없이 많은 것처럼 보인다.

깨끗한 물과 공기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무엇보다 삶의 의미를 음미할 수 있는 여유가 시골에서 사는 가장 커다란 이점일 것이다.

도시를 떠나 한적한 시골로 나가면 얻을 수 있는게 많은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도시를 고집한다.

왜 그런 것일까.

사람들이 그 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도시로 몰려든다면,도시는 분명 사람을 끄는 매력을 갖고 있는게 아닐까.

오로지 ''삶'' 때문에 도시로 나온다고 생각하지는 말자.한번쯤 농촌에서 살아본 사람이라면 시골의 삶이 여유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음을 잘 알 것이다.

여기서 나는 조금은 낯선 주장을 하고자 한다.

우리를 도시로 이끄는건 바로 도시의 여유와 자유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도시의 이웃이 단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지만 10리나 떨어져 있는 시골의 이웃보다 더 가깝지 않다고 자신있게 주장할지도 모른다.

경쟁과 이기심이 판을 치는 도시의 아귀다툼에서 어떻게 여유를 가질 수 있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골에 가서 살 수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실 도시의 혜택을 받은 여유있는 사람들이란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도시는 단순한 생존을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부여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도시사람들의 복잡한 관계에서 생겨나는 여유다.

도시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유롭게 거닐 수 있다.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다 책 한 권을 사들 수도 있고,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마시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 도시다.

어디 그뿐인가.

다른 사람을 관찰하는 내가 바로 그 사람들에 의해 관찰되기를 바라는 은근한 욕망이 살아 숨쉬는 곳이 도시다.

도시에서는 상인과 흥정을 하고, 직장동료와 논쟁을 벌이고,때가 되면 집으로 돌아가는 모든 일이 필연보다는 우연처럼 보인다.

이렇게 익명으로 이뤄지는 도시적 삶의 우연성이 우리에겐 커다란 여유와 자유를 제공한다.

그런데 도시가 요즈음 생태학적 의식이 싹트면서 집중 공격을 받고 있다.

도시가 점점 ''여유의 공간''에서 ''필연의 공간''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경제적 여유만 있다면 도시를 떠나겠다고 주저없이 말한다.

도시인들의 눈빛에는 이제 살기마저 비칠 정도로 도시가 삭막해졌다는 것이다.

이기적인 개인들이 도시에 모여 살아간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면,문제는 아마 전혀 다른 데 있지 않을까.

건물 거리 공원과 같은 도시의 모습이 추하고 여유가 없기 때문에,도시의 경쟁적 삶이 여과되지 않고 우리에게 전달되는 것은 아닐까.

한가롭게 거닐 수 있다는 것은 도시의 매력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열심히 일을 하고 있을 때,사람들은 노동의 운명에서 살짝 비켜나 공원으로 몸을 숨길 수도 있었다.

노동의 고통을 벗어 던진 늦은 밤이면, 도시는 다양한 욕구와 관심에 ''열린 공간''이 돼 더욱 풍요로워지곤 했다.

이처럼 도시는 우리에게 노동 가운데 여유를 허락하고,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유를 제공하기 때문에 매력적인 것이다.

여유와 자유를 도시의 바깥보다는 도시의 안에서 찾아야 할 까닭이 여기에 있다.

도시에서 한가로이 거닐 수 있다면,도시가 일하다 쉴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고 사람을 배척하기보다는 끌어당기는 열린 공간으로 가득 찬다면 도시에 사는 이유가 분명해지지 않겠는가.

자유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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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약력 =

△연세대 독문과
△독일 아우크스부르크대 철학 박사
△아우크스부르크대 철학과 전임강사
△저서 ''탈이데올로기 시대의 정치철학'' ''도덕의 담론'' ''녹색사유와 에코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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