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편이 떠오른다.

제 피부색을 초월,자아를 단련시키면 얼마든지 하버드생도 변호사도 장군도 될 수 있다고 믿는, 그러나 그런 깨우침과 신념이 죄가 되어 무려 30년 넘게 가슴앓이를 하던 주인공의 얼굴이 마치 내 앞에 우뚝 선 것처럼 움찔해진다.

일찍 싹텄던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사상이 오히려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친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그런데 지금 그 흑인 삶의 파편들이 나를 찌른다.

상처받던 장면들을 보면서 속으로 울었다.

그 울음 아직 그치지 않았지만 울음소리를 듣는 이,그 울음의 의미조차 헤아려주는 이 아직은 없다.

''왜 아내와 어머니의 삶,그 너머의 무엇을 보고 싶어했을까.

왜 남성들의 틈새를 뚫고 지나가는 일을 탐했을까.

서른 넘어 공부를 하고 문학을 하여 이방인의 삶을 자청했을까''라는 자해적 질문이 그 울음을 덮을 뿐이다.

어디에도 쉽게 편승될 수 없게 된 뿌리.그러나 좌절할 수는 없었다.

공중에서 헤맨 내 뿌리의 갈증과 허기를 주인인 나마저 외면할 수는 없었으므로.혼자 숨어서 갈등할 때마다 선각자의 삶을 살다간 우리들의 대모(代母)가 떠올랐다.

황진이 나혜석 윤심덕 허난설헌 등 어머니와 아내자리 이외의 생을 꿈꾼 죄.그 당시의 틀을 벗어난 사고가 죄가 되었던 그 분들에 비하면 지금은 얼마나 달라진 세상인가 하면서 고개를 숙인다.

신사임당을 비롯하여 다른 형태의 훌륭한 생을 살다간 우리들의 대모도 많았다는 것을 인정하려고 애쓴다.

뿐만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어머니와 아내 며느리의 자리를 행복하게 지키려고 노력하시는 분들 앞에서 겸허해진다.

성별의 특성을 존중해야만 이 세계가 안온하게 존재될 수 있다고 믿는 다수의 이성들에게 미안하기도 하다.

다만 남자들의 사회적 삶처럼 여성들의 지적 능력과 예술적 재능도 편견없이 바라볼 수 있었으면 한다는 것이다.

''여성의 욕구는 탐욕''이라는 편견이 아직도 강하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때가 많다.

부디 한 아버지의 딸,그들이 제 몸을 바쳐 키운 딸,그런데 누구의 딸이라는 명사와 여성이라는 대명사 사이에서 건널 수 없는 편견의 강을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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