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전통을 얘기하면 흔히 조선시대를 떠올린다.

당시 유물이나 관련 기록을 쉽게 접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조선왕조가 전통문화의 전부는 아니다.

실제로 고려왕조 역시 5백년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이어온 왕조임에 틀림없다.

고려의 역사가 이처럼 멀게만 느껴지는 것은 당대에 기록된 1차 사료가 없다는 데 있다.

당대에 편찬된 ''고려실록''이 있었지만 전하지 않는다.

고려사연구의 기본사료인 ''고려사'' ''고려사절요''는 모두 조선시대에 편찬된 2차 사료다.

조선의 입장에서 고려역사를 평가한 두가지 사료는 무참하게 왜곡돼 있다.

고려사의 진실이 1차 사료인 ''조선왕조실록''을 보존해 온 조선사 만큼 밝혀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 이유야 어찌됐든 기록부재가 빚은 ''고려의 비극''이다.

대한민국 건국이후 국가 기록문서에 대한 역대 정부의 인식은 한심한 지경이었다.

역사불감증이라는 병에 걸려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표적 예는 대통령 문서의 보관 실태에서 드러난다.

대통령이 물러나면 청와대에는 빈 캐비닛만 남기는 것이 관행이었다.

공식문서를 제외한 소위 통치사료는 몽땅 사저로 옮기거나 웬 비밀이 그리 많은지 소각해 버렸다.

뒷날 자신의 기념관은 꿈도 꾸지 않았던 모양이다.

기록문화에 관한한 ''조선왕조실록''외에도 ''승정원일기'' ''비변사등록'' ''일성록'' 등을 작성해 두었던 조선왕조보다 뒤져 있는 꼴이다.

김대중 대통령 취임후 청와대가 기록의 중요성을 강조해 공식 비공식 보고자료는 물론 농담까지 통치사료로 전산화해 남기겠다고 공언했다. 뒤이어 모든 정부 기관의 문서보관을 의무화하기 위해 ''공공기관의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이 제정돼 올해부터 발효됐다.

행정자치부가 최근 이 법의 시행령중 문서의 무단폐기를 막기 위해 목록을 만들어 정부기록보존소에 등록케 하는 ''공공기록물 등록제도''를 현정권 이후인 2004년으로 미루는 것 등을 골자로 한 시행령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는 보도다.

애당초 입법취지를 무색케 한다.

혹 뒤에 말썽이 될 만한 기록은 남기지 않겠다는 속셈은 아닌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