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벤처자금 몰리는 실리콘앨리 ]

누가 혁명가인가.

첨단기술을 가진 벤처사업가인가, 아니면 이들에게 돈을 대주는 벤처캐피털리스트인가.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은 사업에 실패해도 잃을게 별로 없다.

그러나 벤처캐피털리스트는 다르다.

투자에 실패하면 투자금액을 다 날린다.

아이디어맨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큰 위험을 안고 있다.

드래퍼(Draper) 가문은 그런 의미에서 혁명가 집안이다.

지난 58년 드래퍼 피셔 주베츤(Draper Fisher Jurvetson)이란 벤처캐피털회사를 세워 대를 이어 경영하고 있다.

본사는 실리콘밸리에 있다.

핫메일닷컴은 드래퍼가 키운 대표선수중 하나며 지금도 1백50여개의 회사에 투자중이다.

그런 티모시 드래퍼 회장이 지난 1월 집무를 시작한 곳은 실리콘밸리가 아니었다.

록펠러센터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뉴욕 맨해튼 팰리스호텔 39층 스위트룸이었다.

여기서 그는 첨단아이디어를 가진 사업가들의 야심만만한 포부를 들었다.

그리고 다음달 곧바로 뉴욕에 사무소를 개설했다.

개소식 행사에서 배트맨 복장으로 깜짝쇼를 연출한 그는 뉴욕 진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뉴욕은 월스트리트 미디어 광고산업 등 3개의 주요 비즈니스가 모여 있다. 첨단기술과 콘텐츠의 완벽한 결합이 시도되고 있는 셈이다"

드래퍼의 뉴욕 진출은 미국 벤처업계에 엄청난 화제가 됐다.

게다가 지난 5월 대표적인 인큐베이터업체 아이디어랩마저 뉴욕에 사무소를 내자 업계는 첨단산업의 무게중심이 실리콘밸리 중심의 서해안벨트에서 실리콘앨리를 축으로 하는 동해안벨트로 옮겨지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실리콘앨리 기업의 20% 가량이 실리콘밸리에서 왔다"(마이클 캐리 뉴욕시 경제개발협회장) "동해안쪽의 벤처자금 공백은 이미 거의 다 채워졌다"(알렉산더 D 린친 브로벡플레저&해리슨 법률회사 파트너)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앨리(Alley)''의 사전적인 의미는 뒷골목을 뜻한다.

가로 세로가 바둑판처럼 짜여 있는 뉴욕 맨해튼은 어느 각도에서 보든 도로를 사이에 두고 양쪽에 건물들이 숲을 이룬다.

뉴욕사람들은 그 빌딩숲 사이를 가로지르는 길을 앨리라 부른다.

때문에 90년대 중반부터 ''맨해튼 41번가 남쪽'' 지역에서 발전한 벤처기업군을 통칭 ''실리콘앨리''라 부른다.

다분히 실리콘밸리에 빗댄 단어다.

실리콘앨리의 심장부인 맨해튼의 임대료가 5년 만에 3~4배 가량 오르자 기업들의 맨해튼 탈출이 러시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요즘은 맨해튼을 중심으로 한 뉴욕-뉴저지-코네티켓 3개주(tri-states)를 광의의 실리콘앨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벤처자금이 ''밸리(서부)에서 앨리(동부)로'' 이전하고 있지만 이는 단지 미국 첨단산업단지의 양적인 확대를 의미하지만은 않는다.

"밸리는 기술을 창조했지만 앨리는 브랜드를 창조하고 있다"(로버트 H 레신 위트캐피털 회장)는 말처럼 앨리는 밸리와 기본 특성을 달리한다.

첨단기술을 금융 미디어 광고 등 기존의 다른 산업에 접목시키는, 실생활에 사용가능한 ''응용기술''을 개발하는 곳이란 의미다.

뉴욕은 세계 금융중심지인 월스트리트는 물론 세계적인 방송국들과 유명 극장들이 모두 모여있는 미디어 광고 예술의 중심지다.

게다가 뉴욕은 아직 취업되지 않은 작가 예술가 디자이너들이 넘친다.

"많은 콘텐츠들이 계속 발전할 수 있는 장소"(톰 힐랜드 쿠퍼스&라이블랜드의 뉴미디어컨설팅그룹 대표)라는 얘기기도 하다.

실리콘앨리라는 이름이 생긴 것은 불과 5년 전인 지난 95년이다.

밥 펠러라는 사람이 이곳에 벤처기업들이 몰리는 것을 주목해 벤처기업들의 동정을 전하는 ''엣뉴욕닷컴''(atNewYork.com)이란 격주간의 e메일 소식지를 만들었고 여기서 ''실리콘앨리''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했다.

96년 뉴욕타임스가 이 단어를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실리콘앨리''는 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고유명사''가 되었다.

최근 들어 실리콘앨리의 성장은 눈부셨다.

뉴욕뉴미디어연합과 컨설팅회사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와의 공동조사 결과 뉴욕에서 실리콘앨리의 전형인 뉴미디어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업체수는 지난 97년 이후 연평균 23%의 증가율을 보여 총 8천5백개로 조사됐다.

특히 인원증가율을 따져보면 뉴미디어산업은 전통적인 산업은 물론 월스트리트보다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예를 들어 지난 99년 뉴미디어 산업 종사자수는 10만4천6백65명으로 97년(4만1천6백17명)보다 무려 1백51% 증가했다.

그러나 월스트리트의 주역인 증권 상품중개인들은 16만5천5백97명으로 97년(14만9천6백3명)보다 11% 늘어나는데 그쳤다.

실리콘앨리 응용기술의 발전은 이 지역에서 전자상거래를 도입하는 업체들이 크게 늘어나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전자상거래를 하고 있는 업체는 지난 97년 전체 기업의 4%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소매업(8%) 금융업(4%) 등을 포함, 모두 18%로 크게 늘어났다.

밴처지원 자금도 몰려들고 있다.

지난해 실리콘앨리에 쏟아진 벤처자금과 IPO(기업공개) 자금조달은 모두 50억달러.

98년(5억6천만달러) 97년(2억8천만달러)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다.

앞으로 월스트리트가 밝혀 주던 맨해튼의 불빛은 실리콘앨리로 인해 더욱 빛을 발할 것이 분명하다.

뉴욕=육동인 특파원 dong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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